환상을 통한 삶에 대한 긍정성을 확보하려는 소설가 염승숙(26)씨의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소설집에는 독특한 환상성을 펼쳐보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등단작 ‘뱀꼬리 왕쥐’를 포함해 올해 여름까지 발표한 여덟편의 독특한 작품이 수록돼 있다. 수록작들의 주인공들은 시청공무원, 부동산 중개업자, 물리치료사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매우 현실적인 이력을 가진 사람들. 그런데 이들이 하나같이 환상적 사건 속에 빠진다.

예를 들어 ‘거인이 온다’의 주인공은 시청공무원인 ‘나’. 나는 어느날 사랑니를 뽑으러 치과에 들렀다가 의사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의 사랑니가 사랑니가 아니라 1822년에 발견된 이구아노돈이라는 공룡의 뼈라는 것. 또 ‘지도에 없는’의 주인공 김씨는 이십구년 경력의 부동산 중개업자. 그런 김씨가 어느 날 손님에게 햇볕이 잘 드는 옥탑방을 보여주려다가 불광동 1-173번지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동사무소에 가서 확인을 해봐도 불광동 1-173번지는 10년 전, 20년 전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럴 리 없다는 김씨는 자신의 소개를 통해 최근 5년간 1-173번지 옥탑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현실적인 인물들이 겪는 환상, 알레고리, 우화예요.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주인공들의 나이, 경력, 직업 등을 명확하게 했어요. 이렇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 주변에서 환상적인 일이 벌어지게 되지요. 이 환상의 시·공간은 주인공들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에요. 이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끝없이 찾아가는 것이죠.”

실제로 ‘거인이 온다’의 주인공 나 역시 이구아노돈의 뼈를 가진 자신에 대한 추적을 통해, 결국 매일 매일 아무 변화없이 사는 것에 급급해하는 자신이 다름 아닌 괴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도에 없는’의 김씨 역시 겉으로는 불가사의한 공간 불광동 1-173번지를 찾는 듯하지만, 그가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던지는 질문은 “나를 모르겠나요?”이다.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단히 현실적인 주인공들이 자신을 찾아헤매는 이 환상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작가는 이에 대해 “삶에 대한 긍정과 생의 전투적 에너지”라고 답한다.

“비루한 일상, 부정적인 현실을 드러내지만 결국 삶에 대한 긍정을 말하고 싶었어요. ‘지도에 없는’의 주인공만 해도 불광동 1-173번지를 찾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지만 ‘무수한 장부들이 남아있다’며 포기하지 않거든요. 삶에 대한 긍정이고, 생에 대한 전투적 의지이지요.”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