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경제는 국내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불안하다. 서방과 중국 언론들이 ‘한국경제 침몰’을 합창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깊은 우려와 초조감을 금할 수가 없다. 중국에서는 런민르바오(人民日報) 계열의 국제 전문지 환추스바오(環球時報)가 지난 18일 ‘한국경제의 위기’를 처음 보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환추스바오 기사는 며칠 뒤 주중 한국 대사관측의 이의 제기로 온라인에서 내려졌지만 파장은 계속됐다. 홍콩 봉황TV와 중국의 중앙방송(CCTV)을 비롯해 각종 경제·증권전문 매체들이 재인용을 거듭하면서 한국경제의 위기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국제뉴스에 관한 한 중화권 매체들은 항성의 주변을 도는 행성 혹은 위성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국제뉴스 생산 보도에서 항성은 서방의 메이저 매체들이다. 특히 전통의 권위지를 자처하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나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보도에서 가장 ‘악랄한’ 언론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이후 한국경제 위기론에 가장 먼저 불을 지핀 건 FT일 것이다. FT는 지난 6일자 기사에서 숱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유독 한국만 콕 집어 “아시아에서 금융 위기의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했다. 며칠 뒤 FT는 ‘한국, 침몰하는 느낌’(10월14일자)이라는 더 심한 기사를 내놓았다.

WSJ도 ‘한국은 아시아의 아이슬란드인가’(10월9일자)라는 기사로 가세했다. 한국 때리기의 절정은 WSJ가 24일 “IMF의 단기유동성 지원방안에 한국이 포함된다”고 쓰면서 극에 달했다. 이 기사로 한국의 금융시장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그 뒤로도 WSJ는 25일자에서 “한국 정부가 뚜렷한 위기의 증거(evidence of troubles)를 회피하고 있다”며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서방 언론들의 이런 보도 행태는 한국 내의 뿌리 깊은 민족주의 정서를 겨냥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정부 개입의 최소화라는 신자유주의이론을 바탕으로 자본과 금융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하는 선진국의 눈에 반외자 혹은 반외세 정서와 통하는 민족주의적 기류는 명백한 악이다.

행성은 항성을 돌고 위성은 행성을 돈다. 서방 언론의 보도는 개발도상국의 매체들에 의해 전파되고 다시 각급 인터넷 언론과 지역 언론들에 의해 부단히 확대재생산 된다. 문제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용이 떨어지고 심지어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결은 두가지, ‘소통의 확대’와 ‘신뢰의 회복’이다. 소통의 확대를 위해 정부가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시적인 홍보 채널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조치다. 이왕이면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에서 영어로 브리핑하고 중국어로 통역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 주에 두 차례씩 이뤄지는 중국 외교부의 정례브리핑 제도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영어와 중국어가 동시통역되는 브리핑 준비를 위해 3인의 대변인들은 하루 2시간씩 예상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때론 뻔한 답변을 되풀이하고 때론 브리핑장에서 논쟁을 벌이지만 외신들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기사를 송고한다.

더욱 큰 과제는 신뢰의 회복이다.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지만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관리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FT의 지적(10월14일자)은 내키진 않지만 옳다. 정부가 국제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잘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허민 / 베이징 특파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