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전광우 금융위원장,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앞줄 왼쪽부터) 등이 19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취재진의 열띤 취재 속에서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호웅기자

정부가 국내은행의 외채를 지급보증하는 동시에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비업무용 토지를 매입해주기로 전격 결정해 사실상 ‘제2의 외환위기’ 관리체제로 들어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1997년 말 외환위기는 일이 터지고 난 뒤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달러를 빌려 정책결정권까지 넘겨주며 회생작업에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외환보유액과 재정을 통해 선제적으로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오는 22일 건설부문 종합대책을 중심으로 하는 실물경제 지원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 기업·은행 함께 살리기 = 20일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기업체 비업무용 토지를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재계에서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파격적인 조치. 대상은 건설업체뿐 아니라 제조업체 등 일반기업까지 포함된다. 정부는 외환위기 때 2조6000억원의 기업체 토지를 사들였는데 10년 만에 같은 조치를 취했다. 매입자금은 IMF 때보다 많은 6조원 정도, 매입액은 시세의 70~80%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정부의 이같은 정책은 자금경색에 처한 은행과 기업을 함께 살리려는 ‘승부수’로 풀이된다. 급한대로 한국토지공사가 땅을 사주면 기업들은 돈이 돌아 숨통이 트이고, 각종 대출로 얽혀있는 은행도 한숨을 돌리게 된다.

◆ 1차 목표는 건설발 ‘뇌관’ 제거 = 정부는 토공을 통해 토지 매각 희망기업들의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감정평가와 가격협상이 끝나면 채권(담보는 부동산)을 가진 은행에 돈을 지급하고 소유권을 넘겨 받게 된다. 정부의 1차목표는 미분양 사태로 위기에 처한 건설업체들의 줄도산을 막는 데 있다. 건설업체들은 회사채 발행이 전면 중단되면서 올해 1~9월까지 286개사가 부도를 맞았다. 특히 일부 시행사와 시공사들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과정에서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천억원까지 부채를 안고 있다. 건설업체의 부도뇌관이 연이어 터지면 은행들도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책에는 ▲미분양 아파트 환매 조건부 매입 ▲매각 공공택지 환매 ▲부동산 펀드 조성 ▲브리지 론(공사대금 담보대출) 연장 및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지원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버블’ 바람빼기가 목적 = 정부의 금융 및 실물부문 대책은 결국 ‘버블(거품)’을 터뜨리지 않고 바람을 조금씩 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권은 외환위기 이후 싼 달러를 들여와 사실상 ‘돈놀이’를 해왔다. 건설업체들은 부동산 붐을 일으키면서 이곳저곳에서 분양사업을 벌였고, 가계는 입주할 새 아파트를 담보로 손쉽게 은행대출을 얻어 수요를 지탱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국은행들이 국내에서 달러를 회수하다 보니 연쇄적인 자금경색이 발생했다. 정부로서도 국가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우려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기업에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교기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