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골드먼과 필립 리먼은 항상 점심을 같이하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 다 독일 바이에른 출신 이민이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19세기 말 JP모건이 지존으로 군림하던 투자은행(IB) 업계에 같이 진출했다. 자산 가치보다는 수익력과 현금 흐름을 중시한 기업 가치 평가 방법을 고안해내고 그를 통해 무수한 흙 속의 진주를 찾아 시장에 데뷔시켰다.

그로부터 100년도 넘게 지났다. 리먼브러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골드먼삭스는 은행지주회사가 된다. IB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가? 원조 국가 미국이 저렇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 답은 IB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IB는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의 정보 흐름을 매개한다. 정보를 통해 두 경제 주체를 연결시킴으로써 경제적 활동, 즉 투자를 발생시킨다. 그로써 IB는 사회 후생을 높인다. IB는 증권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전파함으로써 효율적인 자본시장에서 그 정보가 증권의 가격에 반영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IB가 공급하는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는 증권이 매출되기 전, 나아가 발행되기 전에 높은 가치를 가진다. 그 정보를 통해 기업과 투자자는 합리적인 재원 배분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한 정보가 없다면 기업이나 투자자는 증권이 발행되기 전의 단계에서 해당 사업, 즉 증권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판단할 방법이 없고 그 때문에 새로운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상실된다.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려면 일단의 사람들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발굴하고 그를 시장에 전파할 인센티브를 가져야 한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정보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산권은 법원에 의해 집행될 수 있는 형태여야 하는데, 정보에 대한 재산권은 기술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IB는 법 외의 기구(extra-legal institution)로서 증권 발행시장의 효과적인 작동에 필요한 그러한 재산권을 창설하는 비공식적인 역할을 한다. IB의 경제적 존립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이다. 즉, IB는 세계 각국의 법제도가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꼭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규제론자들이 힘을 얻을 것은 틀림없지만, 새로운 규제는 경제 활동에 대한 강화된 규제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한 규제가 그 내용이어야 한다. IB의 본질과 1개에 175달러짜리 햄버거, 보너스로 구입하는 헬기와 호화요트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제로 IB의 역사는 초기의 자유방임기를 거치면서 시장과 업계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도입되고 그 후 지속적으로 규제가 완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규제 완화는 IB의 대형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고 규모의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바로 규모의 경쟁 때문에 대형 IB들이 공개됐고 상업은행의 강력한 인프라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시장의 질서에 관해서는 규제가 강화돼 왔다. 2002년 미국의 회계개혁법이 대표격이다. 금융회사들의 리스크 관리 중요성 제고와 자산 건전성과 영업 행태에 관련된 규제 강화는 진행중이었다. 그 속도가 시장을 미처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IB의 육성은 자본시장의 발달이 거시경제 지표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기초하여 추진되는 것이다. 즉, 기본적인 방향이 달라질 수는 없다. 다만, 시장 참가자들의 행위 규제와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가 보다 더 절실한 연구 과제로 설정돼야 한다. 실적과 연동된 엄청난 인센티브는 사람을 지나치게 위험한 행동으로 유혹한다. 이는 어떤 유능한 리더십으로도 통제할 수 없다.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김화진 / 서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