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본격화 된 미국 금융·산업계의 위기가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에는 오히려 좋은 투자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로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구조조정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풍부한 유동성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인수·합병(M&A)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장기적으로 미국 M&A시장의 투자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 WL로스 앤 코의 윌버 로스 회장은 15일(현지시간) “몇 달 안에 많게는 10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이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톰슨 로이터에 따르면 8월말 현재 미국 M&A 시장 규모는 285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감소했다. 이는 미 금융기관 부실로 인한 자금난으로 M&A에 나설 미국의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그만큼 줄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2월 결산 국내 상장 제조업체의 지난해 말 사내 유보율은 675.6%로 전년 동기 대비 64.8%포인트 상승했다. 현금자산의 사내 보유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고 있다는 의미로 실탄 확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의 미국 시장 투자는 물밑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비록 불발로 끝났지만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했고, 자산관리공사도 메릴린치의 부실채권 매입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기업들 역시 풍부한 자금을 무기로 미국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LS전선이 북미 초대 전선회사인 수페리어 에식스를 인수했고, 동원그룹은 미 델몬트사의 스타키스트 미주지역 자산을 사들였다. 삼성전자도 세계 1위 플래시 메모리 카드업체인 샌디스크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현 CJ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은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기회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현금유동성이 있는 대기업들은 M&A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중한 투자전략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외환위기 당시 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때의 투자전략을 깊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며 “매수 타이밍이 중요하며 당장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가)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대환기자 hwan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