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고릴라’ 리처드 풀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영국 더타임스는 15일 미국 월가의 위기를 보도하면서 이같이 언급했다. 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함에 따라 월스트리트의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한 사람인 풀드(62·사진) 리먼브러더스 회장도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 1969년 리먼브러더스에 입사한 그는 47세의 젊은 나이에 CEO에 올라 올해로 15년째 회사를 이끌어 왔다. 더타임스는 “그는 그동안 직원들을 부자로 만들었고,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그는 수완가로 잘 알려져왔다. 그는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 직후 리먼브러더스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극적으로 회사를 살려냈다. 2001년 정보기술(IT) 분야의 거품이 꺼지고 9·11테러의 여파로 금융시장이 일대 충격에 휩싸였을 때도 상당히 안정된 수익을 올려 주위를 부럽게 했다. 허세에 찬 기업인수에 나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원도 단행하지 않는 중도적인 경영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수완이 또다시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의 보수적인 사고가 패착을 불러온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매분기 손실규모가 커지는 와중에서 우량 자산의 매각과 부실부문의 분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했지만 그가 장부가격 아래로 우량자산을 매각하는 것을 계속 주저하다가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