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보수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 6개월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정체성 없는 실용을 벗어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실용과 탈이념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노선이 잘못됐으며, 국민 지지도 추락, 리더십 부재 등을 극복하기 위해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권유하고 나섰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명박 정부 6개월 평가:‘실용’인가, ‘포퓰리즘’인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박효종 서울대 사범대 교수는 ‘선진화를 위한 실용의 실체를 선보이지 못한 6개월’이라는 제목의 정치 분야 발제에서 “좌파진보진영에서는 우파보수가 승리했다지만, 보수의 마음에는 ‘지금 이대로 좋은가’하는 의구심이 꿈틀거리고 있다”며 지난 6개월 평가에 회의적 입장을 피력했다.

박 교수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국정철학의 핵심으로 내세운 실용의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다가오지 못했으며, 실용을 통한 선진화에 관한 분명한 로드맵이나 청사진도 없었다”면서 “그 결과 ‘실용’은 원칙이나 중심도 없는, 부정적 의미의 기회주의, 임기응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의미로 부각됐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실용은 이념과잉시대였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면서도 “실용으로 대변되는 탈이념보다 헌법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이념을 내세워 국민통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나홀로 리더십’이며 ‘정치형 리더십’이 아닌 ‘CEO형 리더십’에 그쳤다”고 일침을 놓았다.

조동근(경제학) 명지대 교수는 경제 부문 평가에서 ‘시장원칙에 반하는 국가개입주의 및 대중영합주의’를 비판했다. 조 교수는 “통신요금을 ‘행정지도’를 통해 낮추겠다는 것은 산업화시대에나 나올 법한 발상이며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방식이었다”면서 “‘마켓프렌들리(market friendly)’, 즉 ‘시장친화성’으로 고쳐야 더 정확한 개념인 ‘기업프렌들리’란 용어는 ‘창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으로 이해되지 않을 경우 노동자 편에 섰던 참여정부의 반작용처럼 비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 역시 “실용은 시대정신도, 국정철학도 될 수 없고 ‘결과주의’로 흐를 수 있으며 원칙이 실종된 ‘회색지대’를 양산할 것”이라면서 “이념과잉을 경계하지만 ‘자유주의’ 이념의 정체성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명희 공주대 사범대 교수는 교육 분야 발제에서 “많은 정책 공약들이 교육수요자의 여망을 반영해 만들어진 상황에서 뚜렷한 원칙, 이념이 드러나지 않았고 이를 ‘실용’이라 이름 붙였다”며 “그러나 중장기적 과제인 교육문제에는 원칙과 이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박호진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장은 “의료문제에 관한 한 극우파는 없다”며 “국민건강보험 등을 둘러싼 오늘의 상황은 우파와 극좌파의 갈등”이라고 주장했다.

조민진기자 wayto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