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양궁 대표 하야카와 나미(24)는 2003년까지 엄혜랑이라는 한국 선수였다. 전북체고를 졸업한 후 한국토지공사에서 1년간 선수로 활동하다 2004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엄혜랑은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조부모 밑에서 어렵게 자랐고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했다. 매일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그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두번 나갔지만 탈락했다. 전망이 불투명한 그에게 일본에서 재혼한 어머니가 “일본에서 같이 살자”고 해 일본으로 갔고 일본체대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장래 꿈은 학교 교직원. 할 줄 아는 게 활 쏘는 것밖에 없어 다시 활을 잡았다. 지난해 3월 세계실내선수권에서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엄혜랑은 일본 대표로 뽑혀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엄혜랑은 2006년 1월 국적을 바꾸고 이름중 ‘랑(浪)’을 그대로 살려 ‘하야카와 나미(浪)’가 됐다. 그는 “국적은 바뀌었지만 일단 올림픽에 나올 수 있어서 기뻐요. 기쁘다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올림픽은 국가 간의 싸움이 아니라 선수 간의 경쟁이라는 얘기를 믿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일본에 간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 일본어보다 한국어가 능숙하다는 그는 양궁연습장에서도 비슷한 처지인 한국계 호주 대표 김하늘(26)과 있을 때 가장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는 베이징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일본은 그에게 은근히 메달을 기대하지만 한국처럼 지나친 심리적 압박을 주진 않는다. 그는 그런 일본이 좋다고 했다.

엄혜랑은 “한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고, 일본은 내가 좋아하는 나라예요. 둘 다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9~10일 열리는 여자 단체전에 일장기를 달고 나간다. 거기서 한국팀과 맞붙는 일이 있어도 선수로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게 두 나라 모두를 위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윤기자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