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아세안 외교 무대에서 대북·대일 압박전을 강화하고 있다. 22일 시작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 중인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한군의 총격에 의한 민간인 사망사건을 한반도 주변정세의 핵심이슈로 설정, 아세안 + 3(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때 집중제기했고, 일본 측과의 어떤 회동도 거부함으로써 일본의 ‘독도도발’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세안무대에서 고립되는 북한 = 유 장관은 22일 오후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개막된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에서 한반도 지역정세와 관련해 지난 11일 금강산에서 발생한 민간인 피격사망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이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남측조사단의 방북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토론내용의 철저한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아세안+3외교장관회의 원칙상 개별국가가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아세안 일부 국가들은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금강산사태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양제츠 중국외교부장은 유 장관의 발언을 경청했으나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금강산사태해결 촉구의지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 담기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북한은 24일 아세안과 우호협력조약을 맺을 정도로 아세안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는데 ARF 의장성명에서 금강산사태 조기해결 및 재발방지 촉구내용이 담기게 될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의춘 북한외상은 21일부터 싱가포르를 공식방문하고 있으나 한일양측의 회동제안에 모두 응하지 않은 채 외톨이 행보를 하고 있다.

◆강화하는 대일압박전 = 정부는 일본의 독도도발에 대한 항의조치로서 일본과의 양자회동은 물론 한·미·일 3자협의도 거부했다. 일본의 독도도발에 따른 항의조치로 일본과의 어떤 양자협력도 갖지 않는다는 방침인 것이다. 유 장관은 22일 오후 아세안+3외교장관회의 때 고무라 마사히코 (高村正彦) 일본외상과 악수도 하지 않은 채 냉랭한 분위기로 일관했다. 일본 언론들은 고무라 외상이 유 장관과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단시간에 극히 의미 있는 의견 교환을 했다”고 보도했으나 정부당국자는 “유 장관과 고무라 외상은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정부는 그러나 독도 문제를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는 공개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다자외교무대에서 독도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 원하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차관보는 22일 김숙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의 회동 때 일본의 독도영유권 명기문제에 대한 우려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이날 한·미 수석대표회동에서 김 본부장으로부터 독도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들은 뒤 6자회담 프로세스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