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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씨가 조심스럽게 연극계로 돌아왔다. 배우가 아니라 제작자로서다. 8월15일부터 9월7일까지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무대에 오르는 창작뮤지컬 ‘사춘기’가 바로 그 작품이다. 15일 정미소 3층 연습실을 찾았다. 허위학력 소동으로 1년 가까이 활동을 자제해온 윤씨의 컴백(?)무대인 만큼 공연을 한 달 앞뒀지만 작품은 내일 당장 무대에 올라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짜여졌다.

작품의 완성도를 특히 강조하는 ‘수공업 스타일’인 윤씨의 뮤지컬은 보통 연습기간이 일반 공연의 3배가 넘는 6개월가량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이상 공이 들어간 것 같다. 이날 윤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처럼 하는 런스루(run through) 연습에 처음으로 참관, 연출가 김운기씨 등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윤씨는 “4년 전부터 작업해오던 것이었는데 내 사정으로 마냥 늦출 수는 없었다”며 “꿈과 열정으로 창작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들을 위해 작은 길이라도 되고 싶었다”고 제작배경을 밝혔다. 그는 “어려운 길이었지만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다”며 “시작은 어려울 수 있지만 끝끝내 창대해질 수 있도록 독려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사춘기’는 지난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을 수상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사춘기)’과 같은 원작으로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가 썼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도발적인 가사와 폭발적인 음악, 충격적인 전라의 무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으로 번안한 ‘사춘기’는 한국인의 피부에 다가오는 내용과 연극적인 앙상블, 그리고 정적이면서도 깊은 힘을 갖고 있는 음악과 춤이 특징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엄숙한 종교적 힘과 군국주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19세기 독일의 분위기 속에 파국으로 치닫는 청소년들의 폭발적 정열을 그렸다면, ‘사춘기’는 정보통신(IT)강국,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학력위주의 한국 상황을 현실과 환상의 어름에서 풀어냈다.

연출가 김씨는 “뉴욕에서 공부할 때부터 워크숍으로 작업해왔던 연극으로 원작은 종교적 상징이 많이 들어있는데 모두 솎아내고 한국적 상황으로 완전히 개작했다”면서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지난해 토니상을 타 작품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는데 윤 대표가 ‘그 작품을 보지 말고 하던 대로 독창적으로 나가라’고 격려, 작품을 끝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춘기’와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전개방식은 전혀 다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엄격한 수업, 착한 문제아의 자살, 순수한 사랑과 사회의 불관용이 빚어낸 비극 등 사건의 발생순으로 소년이 한 인간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펼쳐냈다면 ‘사춘기’는 역순으로 한국 청소년들의 현재 심리를 흥겨우면서도 얄밉게 해부하며 현실을 비판했다. 또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대극장 버전으로 브로드웨이 특유의 화려한 무대가 중심이라면 소극장 뮤지컬인 ‘사춘기’는 아기자기한 연극적 상징과 서사로 끈끈한 앙상블에 집중했다. 음악으로 따지면 록과 발라드의 차이쯤 될 것 같다.

‘사춘기’는 정신병원에 있는 영민의 추억으로 시작한다. 영민은 전학 오자마자 전교 1등을 차지한 영리한 소년이다. 그러나 가정의 불화를 컴퓨터 게임과 채팅으로 풀어내며 불평불만에 염세주의자가 됐다. 착하기는 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소심한 선규에게 부정행위 기술을 가르쳐주고, ‘파우스트’의 그레첸을 연상시키는 순결한 소녀 수희를 타락시킨다. 결국 선규는 퇴학당하고, 아이를 밴 수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영민도 부주의로 죽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불분명한 가운데 “발푸르기스 어둔 밤, 우리들의 청춘/ 발푸르기스 어둔 밤, 축제의 밤/ 사랑하는 친구, 용서해 주겠니/ 흔들리던 사랑, 기억해 주겠니/ 심장의 피가 탁해지고 있어/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오늘 밤 웃지 못하면/ 영원히 웃지 못하리// 너를 사랑했다, 친구야/ 니가 그리웠다 친구야/ 가슴이 너무 아파/ 심장이 멎었으면 좋겠어…” 주제곡 ‘발푸르기스의 밤’을 합창하며 막이 내린다.

김씨는 “사회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 뒤에는 대부분 어두운 성장배경이 있다. 우리가 사춘기를 건너뛸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아름다워질 것인가. 사춘기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고 말했다.

극본 이희준, 작곡 박정아, 안무 오재익. 출연 박혜수, 맹주영, 전미도, 조창우, 이기섭, 윤원재, 임철수. 02-3673-2001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