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청와대의 부실한 위기관리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흘 전인 11일 발생한 금강산 총격피살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왔지만 애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구멍 뚫린 시스템과 함께 “위기 관리 마인드가 없었다”(청와대 관계자)는 내부 자성론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건 발생 초기 ‘늑장보고’와 ‘잘못된 보고’등 두 가지의 잘못으로 인해 판단 미스를 범하게 됐다. 긴급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중요한 첫발인 ‘1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통일부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 부처간의 손발도 맞지 않아 이 대통령은 최종판단에 혼란을 겪어야 했다.

◆구멍 뚫린 시스템 = 이 대통령은 ‘늑장보고’ 의혹과 관련, “통일부에 보고되고 나한테 보고되는 데 무려 두 시간 이상 걸린 것은 정부 위기대응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강도높게 질책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4일 “참모 입장에서 아무리 상황을 종합판단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려고 했다하더라도 1보, 즉 첫 보고는 마땅히 이뤄졌어야 한다”며 초기상황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고위관계자는 “우선 1보가 이뤄지고 난 뒤 즉각 긴급 수석회의가 열렸어야 하는데 뒤늦게 대처하는 우를 범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총격사실이 보고된 비슷한 시각, 합동참모본부가 청와대에 ‘질병사로 추정된다’고 잘못된 보고를 올린 것도 청와대를 우왕좌왕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이로 인해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질병사 여부를 판단하는데 20분을 까먹으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됐다.

◆ 시스템 보완론 대두 = 이같은 허점을 낳은 구조적 문제로 부실한 시스템이 지적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실권을 가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맡아 비상시 위기관리센터로 직보를 받고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단선 라인 형태다. 이에 비해 현 청와대에는 종합 총괄기능을 담당하는 NSC를 폐지했고, ‘위기정보상황팀’(15명)만이 기능과 권한, 인력이 대폭 축소된 형태로 남아 있고, 대통령실장에 직속된 임시조직이다. 외교안보수석이 있긴 하지만, 상황팀장과 대통령실장이 국가위기 및 예민한 외교현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핵심라인으로 편제된 셈으로 시스템상 제대로 된 역할수행에 무리라는 지적이다. 고위관계자는 “NSC 부활까지는 아니지만, 위기대응팀의 대폭적인 인력 및 역할 강화와 유기적인 시스템 구축 등 보완방향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잘못된 첫발로 혼선 계속 = 사건 당일에는 이 대통령이 ‘전면적인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이번 사건과 상충되는 국회 개원연설이 예정돼 있었지만 처음부터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잘못된 첫발로 계속 우왕좌왕해야 했다. 이 대통령은 첫보고를 받은 당일 오후 1시30분 이후 국회에 도착한 뒤 현장에서 긴급 참모회의를 열었다. 정확한 판단거리가 없이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2명의 수석급 참모는 “원고수정 또는 관련대목 삭제”를 주장했고, 나머지 수석들은 “상황파악이 완전히 안됐고 큰 틀의 남북관계 제안인 만큼 예정대로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결국 다수가 찬성한 ‘원고 강행론’을 채택했고, 잘못된 첫발로 인해 이후 비판의 화살을 다 떠안게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김상협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