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3일 귀환한 금강산 관광객들의 증언을 통해 박왕자(53)씨 총격 피격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북한·군사 전문가들은 목격자들의 증언과 북한측의 성명, 현대아산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이번 사건이 북한 초소 경비병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 군부 상부의 묵인하에 이뤄진 것이지를 두고 사건 실체 규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4일 현재 사건 실체규명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은 피격당시 해돋이 사진을 찍기 위해 숙소앞 해변에 앉아 있었던 이인복(23·경북대 사학과 2년)씨와 이씨를 인솔한 김두현(40) 대구통일교육협의회 사무국장의 증언이다. 이씨는 “13일 여명 전 펜스 너머 해안에서 2발의 총소리가 났으며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은 12일 담화를 통화 “우리 군인이 군사통제구역을 침범한 그를 발견하고 서라고 하였는데도 그가 응하지 않고 달아났으며 공탄(공포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북측은 박씨에게 정지 명령을 내리고 공포탄을 쏴 경고를 했는데도 달아나 사격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당시 현장에서는 공포탄 1발과 박씨가 맞은 2발 등 모두 3발의 총성이 들렸어야 했다. 사격을 가한 지점도 의문이다.

목격자 이씨는 “총소리를 듣고 녹색 펜스와 바다 사이를 이어놓은 모래둑 위에 올라서 보니 약 200∼300m 거리에 여자 한 명이 쓰러져 있었고, 산 쪽에서 북한군 3명이 뛰어와 쓰러진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총소리 직후 바로 뛰어왔다면 사격 지점은 해변을 따라 1㎞ 북쪽에 있던 기생바위 부근 초소가 아니라 근거리에 있는 다른 초소였을 개연성이 높다.

금강산하청업체직원인 양모씨는 “한국 관광객들은 펜스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나도 사고 나서야 유심히 살펴보니까 보이더라. 5번 갔는데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면서 “현대 아산측 얘기로는 펜스에도 초병이 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펜스 초병이 놓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중건설이라고 거기서 일하는 회사 토목소장이 11일 새벽 산책나갔다가 아주머니가 해안 쪽으로 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팔각정과 호텔 사이 고성항횟집 부근에서 봤다고 한다. 이 소장은 숙소에서 해금강호텔쪽으로 산책하고 있었고, 호텔에서 다시 숙소쪽으로 오가다 총소리를 들었다고 한다”고 증언했다.

◆사격 지점과 시간대 규명해야 =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사건 발생 경위를 발표했지만 사건 발생 시각과 총격 횟수, 관광구역을 벗어난 이후 박씨의 동선 등에 대한 의문점이 커지고 있고 현지 목격자의 진술과도 엇갈려 통일부가 공식 의혹을 제기했다. 북한 초병이 박씨를 발견한 이후 사격을 가한 과정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북측은 12일 담화에서 박씨가 총격을 받고 숨진 시각을 새벽 4시 50분이라고 밝혔지만 새벽 5시가 훨씬 지난뒤에 총성이 들렸다는 관광객의 증언도 나오고 있다. 관광객 이모씨는 “5시에 정확하게 해금강 호텔을 나왔어요. 산책을 하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 한 (총소리를 들은)시간이 (5시)15분에서 20분 정도요. 총소리가 나면서 비명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북측이 해가 뜬 뒤 비무장 상태인 관광객을 쏜 것을 숨기려고 총격 시간을 일출 전으로 앞당긴 것은 아닌지, 북측이 밝힌 사건경위 전반에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목격자 증언 등 전체 정황을 볼 때 초병이 경계태세 과정에서 너무 경직된 데서 발생한 우발적 사고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초병이 숲에서 나온 것으로 볼때 초병이 정위치 근무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측이 현대아산에 피격사실을 알리는데 4시간 가까이 걸렸다는 것은, 민간인 여성 관광객임을 확인하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군사경계구역 깊숙이 들어온 것으로 짜맞추기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사격전문가들 얘기로는 북한경비병의 아카보 자동소총이 정확히 명중됐다는 사실과 관련, 300~400m에서 가슴과 둔부에 정확히 명중시키는 것은 총의 성능을 볼 때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도망가는 사람을 뒤에서 정조준 사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충신·조성진기자 csjung@munhwa.com, 대구 = 박천학기자

■목격자 진술 내용

▲ 이인복(23·경북대 사학과 2년)·김두현(40·대구통일교육협의회 사무국장)“여명 전 10여초 간격으로 2발의 총소리가 났고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북한 초병 3명이 달려와 쓰러진 사람을 흔들었다.”

▲ 양모(금강산 하청업체 직원)“한국 관광객들은 펜스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나도 사고가 나서야 유심히 살펴보니까 보이더라. 현대건설 쪽 얘기로는 펜스에도 초병이 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펜스 초병이 놓친 것으로 보인다.”

▲ 김모(박왕자씨 일행)“활기찼던 박씨가 첫날 피곤에 지쳐 일찍 잠들었다. 10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해 뜨는 장면을 놓친 박씨는 내일 아침에는 꼭 보겠다고 말했다.

사고 후 현대아산 관계자는 ‘박씨가 북한 쪽 경계를 넘어갔고, 초병이 호루라기를 불었는데 불응해 총에 맞았다’고 설명했다.”

▲ 곽병문(36·서울 동작구 사당동, 골프관광객)“주의사항을 들었다. 11일 오후 3시쯤에 총격 얘기도 하고, 내일 가고 싶으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 이삼환(53·아난티 골프 관광객)“저녁에 밥 먹다가 일행에게 들어서 알았다. 13일 오전 구룡폭포에 갔는데 북한 안전요원이 수화를 했는데 도망가는 바람에 총에 맞았다며 다 알고 있더라. 서로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 문모(금요일 금강산 들어갔음)“11일 오후 금강산에 들어갔는데 들어갈 때는 몰랐다. 저녁에 한국 방송 보고서야 사고가 난 줄 알았다. 현대아산 쪽에서 경위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