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일 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에 참가한 사제와 수녀들이 백합꽃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신창섭기자

길거리 ‘시국미사’와 ‘시국법회’가 막바지로 치닫던 ‘시위 정국’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미 지난 30일과 1일 두 차례 시국미사를 마쳤고, 불교계는 오는 4일 대대적인 시국법회를 예고하고 있다. 불교계는 이명박정부를 ‘종교편향’으로 규정하고, 범 종단차원에서 시국법회를 지원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과거식 권위주의 정부가 종식된 지금, 종교계의 대대적 현실참여에 대해 인터넷에서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측은 새로운 투쟁동력을 얻게 됐다고 반기고 있지만, 우려하는 시각이 많이 개진되고 있다.

종교인의 움직임은 일단 거리시위를 연장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시국법회를 준비하는 한 스님은 2일 “현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지나치게 압박하는 만큼, 이제 종교계가 나설 때가 됐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이나 불교단체들도 국민대책회의 참여멤버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주최측 내부에서 옷만 갈아입었을 뿐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시국미사와 시국법회가 또 다른 파장으로 와닿는 것은 종교행사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길거리 시국미사와 시국법회는 30여년 정도의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가 만들어낸 한국식 종교행사로 불릴 수 있다. 사제단의 신부들은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있다”는 마태복음 7장15절을 내세우며 거리 시위에 뛰어들었다. 선악의 이분법을 즐겨쓰는 종교인들의 수사(Rhetoric)는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강한 톤으로 전달되고 있다.

종교의 현실 참여 역사는 오래됐다. 로마제국 시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힘을 바탕으로 교세를 확장한 초기 기독교나 호국불교로 성장해온 불교계의 현실참여 역사는 친권력적이었다. 반면 남미의 민중신학이나 한국의 시국미사, 시국법회는 반권력적 현실참여로 분류된다. 종교학자들에 따르면 종교와 권력은 집단화를 통한 강력한 힘의 결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협력과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종교학자인 정진홍(종교학과) 서울대 명예교수는 2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종교계의 현실참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신념의 맹목성을 추구하는 종교의 속성상 종교계의 현실참여는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중신학이라는 것도 경제가 조금 좋아지니까 다 사라졌다”면서 “종교의 현실참여는 치열한 내부 성찰이 없으면 맹목적이고 반지성적이며 반이성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항상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386세대들은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발표, 6·10항쟁의 도화선을 만들었던 사제단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과거 시국 참여에 적극적이었던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도 이번엔 “이제 촛불을 끄고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개인의 의사표현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시대에 종교계의 현실참여는 자칫 종교내부의 분열은 물론, 사회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갈등 치유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종교적 영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을 곱씹어봐야 할 때다.

천영식기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