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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대통령 직속 합의제기구 방송통신위원회가 기대 속에 출범한 지도 벌써 넉달째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방송통신 융합 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기존 방송과 통신 시장에 상존해 있던 과다한 규제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개선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평가를 내리기가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방통위 행보를 보면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앞으로 방통위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정책을 집행하고 운용해 나가야 할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현재 방송통신 정책은 한마디로 표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준형(52·부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8일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부원장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방송통신위원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상임위원회의 경우 상임위원 5명이 모두 ‘시어머니’이고 정치적 배경도 다 같지 않다”며 “그러다 보니 방통위가 상임위원 5명의 요구와 관심사를 총족시키는 데만 전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합쳐 방통위를 만들기 전만 해도 장관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예전에만 해도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통신산업을 발전시켰고 이를 다른 나라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시장에 주도권을 넘겨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업정책을 적극 펼치는 것도 아닌 애매한 공백상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방통위는 순수 규제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산업 육성 정책도 적극 펼쳐야 하는데도 이같은 구조적인 제약에 발이 묶여 사실상 산업정책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방통위를 처음 설계할 때는 장관이 위원장을 겸임케 해 독임제를 가미한 합의기구로 만들려고 했었다”며 “그러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산업정책을 강력하게 끌고 갈 수 있는) 독임제 요소가 사라지면서 방통위가 정책을 만들어 이끌어나가는 기능보다는 규제 이슈를 조정하는 합의 기능을 우선하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만 해도 위원장의 권한이 큰 독임제 요소가 강하다. 그는 “우리의 경우 이제는 합의제로 갈 수밖에 없다”며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의 조직적인 전환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방통위는 심사기구 역할을 했던 방송위와 정책 수립·집행 역할을 했던 정통부 간의 상반된 문화가 물과 기름처럼 섞여 있기만 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홍 교수는 “결국은 위원장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치적 배경이 다른 위원들을 설득해서 동의를 이끌어내고 신망을 얻어 5명이지만 한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자질과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위원장의 리더십이 발휘돼야 인터넷TV(IP TV) 시장 등과 같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실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 분야의 하루는 제조업 분야의 10년과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홍 교수는 “방통위는 규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는 산업 육성 문제를 다루는 곳”이라며 “상임위원은 정치적 고려나 기득권 배려로 산업 경쟁력을 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산업을 어떻게 끌고 갈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금처럼 각종 정보기술(IT) 산업정책이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는 상황에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플러스섬 게임을 위한 융합(컨버전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