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김호웅기자

세계 각국의 해양 관련 분쟁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리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의 뤼디거 볼프룸(67) 소장이 최근 방한, 외교통상부 및 학계의 국제법전문가들과 두루 만나고 서울대 등에서 특강도 했다. 독일 국제법학계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볼프룸 소장은 1996년 ITLOS가 설립되기 전부터 유엔활동에 참여하면서 세계분쟁국가에 대한 법률지원을 해온 전문가로 유명하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볼프룸 소장은 “1995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인데 13년 만에 서울은 완전히 다른 도시로 변신한 느낌”이라며 글로벌세상을 무대로 한 그의 활동과 철학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1.국제해양법재판소장이 보는 한·일해양분쟁

―ITLOS는 박춘호 교수가 재판관에 선출되면서 국내에서 관심을 끌었던 국제기구인데 소장으로서 활동을 소개하신다면.

“ITLOS는 세계 각국의 해양 분쟁에 대해 최종 판결하는 최고권위의 기구로 유엔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본부는 함부르크에 있죠. ITLOS에는 박 재판관을 비롯해 21명의 재판관이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우리 재판소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ITLOS 소장은 그간 인도 출신 등이 맡아왔는데 유럽 출신으로는 제가 첫 소장입니다.”

―한국에서 한·일 간 독도영유권이나 어업분쟁 등이 제기될 때마다 ITLOS가 조명을 받는데,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은.

“엄밀히 말하면 독도영유권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 소관이고, 한·일 간 배타적 경제수역문제나 어업분쟁 등이 우리 소관이죠. 하지만 ITLOS가 생긴 뒤 한·일 어느 한편도 양국 간의 해상 관련 분쟁을 ITLOS로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장으로서 얘기를 하기가 조심스럽네요.”

ITLOS는 설립 이래 일본·호주·뉴질랜드의 참다랑어 조업분쟁 등 15건에 대해 판결을 했는데 한·일 양국은 아직 어떤 분쟁도 ITLOS에 가져가지 않은 상태다. 볼프룸 소장에게 거듭 한·일 간 독도 수역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묻자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ITLOS에 갖고 온다면 우리 입장을 얘기해주겠다”면서도 “과연 이 문제를 ITLOS로 가져가는 게 국익에 맞는지 잘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2 분쟁국 갈등 중재 추구하는 현장지향의 국제법학자

―ITLOS 설립 전부터 다양한 유엔기구에서 활동해온 국제법 교수로 유명한데.

“1982년에 마인츠대 교수가 되면서부터 유엔 관련 활동을 시작했는데 국제법 전공자로서 국제법이론을 현실사회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한 일이죠. 처음에는 유엔인종차별위원회에서 전문가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11년간 일하며 인종차별 관련 연례보고서를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특히 르완다, 유고슬라비아, 코소보, 이라크 쿠르드족 차별 문제 등에 많이 관여해온 편입니다. 나는 독일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 아주 깊이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국제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든 일차적 동기가 됐다고 봐야겠죠.”

그는 ITLOS 소장으로 일하면서 하이델베르크대 법대 현역교수로 활동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법조인 육성작업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그의 지원대상국가 목록에 소말리아가 추가됐다.

―ITLOS 소장으로서 일상업무도 만만찮을 텐데 함부르크와 하이델베르크, 세계 각국을 오가며 그렇게 열성적으로 활동하게 된 동기를 말씀하신다면.

“제가 하이델베르크대 플랑크센터 국장으로 있는데, 이 센터는 국제법 및 비교법 관련 연구소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여기에 있는 방대한 세계 각국의 헌법 자료를 활용해 아프리카 및 아시아 분쟁국의 법률자문 및 헌법제정 작업을 돕는 것이죠. 국제법학자나 재판관은 아주 프래티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학교와 연구소에서 국제법과 인권, 평화 문제를 가르치면서 현실세계의 문제에 관여하고 조언하는 것은 그런 현실적 감각을 얻기 위한 것이죠.”

―분쟁국 법률지원 활동 중 수단에 대해 특별히 많은 노력을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수단에서는 최악의 내전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다르푸르 등지에서 인종학살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단 사람들을 만나보면 무엇이 갈등의 뿌리이고 어떻게 풀어야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재에 나서 수단 법조인을 육성하며 조언을 하는 것이죠. 우리는 정기적으로 수단을 방문해 수단 정부의 헌법제정 및 법조인 양성작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다르푸르의 인사 40여명을 독일로 초청, 갈등해소 교육도 진행 중입니다. 국가가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교육합니다.”

#3 독일 지식인이 본 독일 통일과 요즘의 한국

―국제법학자의 시각에서 본 독일 통일 전망은 어떠했는지요.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때 미국 미네소타주에 머물고 있었는데 제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런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동독을 자주 방문한 사람인데도 통일이 올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아마 학자들이나 정치인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분단은 부자연스러운(unnatural) 것이지만, 그것이 순간적으로 해소될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죠.”

―국제 경험이 풍부한 법학자도 통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놀랍네요.

“통일 이전에 독일 지식인들 누구도 통일 가능성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통일 기회는 솔직히 아주 짧고 희미한 상태로 왔는데 헬무트 콜 당시 총리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았습니다. 그는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통일을 밀어붙였습니다. 물론 콜 전 총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기술적으로 통일에 오류가 많지만, 그의 공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

―인생전반기는 분단시대, 후반기는 통일시대에 살고 있는 지식인으로서, 한국인들에게 통일 관련 조언을 하신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2개로 나눠졌던 단위가 하나로 통합돼 좋지만 구서독과 구동독 사람들은 여전히 상대방의 사회관행과 생활문화 차이로 고통을 겪고 있어요. 남북한의 경우 독일 사례보다 더 심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서울 방문 때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불편을 겪었을 텐데.

“독일 도시에서는 거의 매일 특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납니다. 나는 1968년 혁명 때 대학을 마쳤는데 당시 학생 시위는 아주 규모가 컸고 심각했죠. 시위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의 시위대들이 내건 주제는 쇠고기 아닙니까. 우리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갖고 발생되는 시위를 많이 봤습니다. 시위는 특별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는 행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독일 68세대”라고 말하는 그에게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68혁명의 의미에 대해 물었더니 “아주 성공적이지 못한 투쟁이었다”면서 “많은 이들이 68혁명의 추억을 얘기하지만 저는 그것이 아주 파괴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는 기억 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얘기했다.

볼프룸 소장은 이날 인터뷰 말미에 “개인적으로 선박기술에 아주 관심이 많아 방한 일정 중 울산 현대중공업 방문을 특별히 넣었다”는 다소 의외의 말을 했다. 그는 현장 방문 후 소감을 얘기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난 6일 이한에 앞서 “규모면에서뿐 아니라 최첨단의 작업방식과 기술로 선박을 제조하는 현대중공업이 아주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동행했던 김두영 ITLOS 사무차장을 통해 전해왔다.

볼프룸 소장은 누구

2차대전 중인 1941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본과 튀빙겐에서 성장했으며 1973년 본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본대학 국제법 센터 부교수를 거쳐 킬대학 국제법 센터 교수 및 부총장을 역임했고, 1993년부터 하이델베르크대 법대 교수 겸 비교법 및 국제법에 대한 막스 플랑크센터 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연구재단 부회장, 과학발전을 위한 막스 플랑크 모임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6년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창립 후 초대 재판관에 피선, 1999년 재선됐고 ITLOS 부소장을 거쳐 2005년부터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유엔 : 법과 정책, 실천’ 등 국제법 관련 다수의 저서가 있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