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심만수기자

미국과 러시아, 유럽각국 등 총 5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안보협력체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이끄는 마크 페렝 드 브리샹보(60) 사무총장은 프랑스 외교부와 국방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는 지난 4월28∼29일 방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과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고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OSCE와 헬싱키 프로세스’란 주제로 특강도 가졌다. 헬싱키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이 안팎으로 높아지고 있는 요즘, OSCE 사무총장 자격으로 첫 방한한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만나 동서진영간 협력의 틀을 만든 OSCE의 경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1 亞지역안보체 형성 의지·비전 필요

―OSCE사무총장으로서는 첫 방문인데 방한 목적에 대해 소개하신다면.

“한국은 1994년부터 OSCE의 아시아 협력파트너국이 됐는데 이번 방한에서는 OSCE와 한국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고려대 특강 외에 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을 만났는데 헬싱키 프로세스에 대해 관심이 높더군요.”

―한국에서 OSCE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만들어낸 기구로 알려져 있을뿐 활동전반에 대해선 여전히 친숙하지 못한데….

“OSCE는 유럽 및 미국,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56개국이 참여, 공동안보 및 정치, 경제, 환경, 인간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기구입니다. 아시아에는 아직 OSCE같은 안보협력기구가 없는 만큼 우리가 아시아 안보협력기구 형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아시아 안보기구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있는데 이것이 OSCE같은 기구가 되기 위해선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의 길고 짧음보다 중요한 것은 ARF참여국들이 어떤 의지와 꿈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참여국들의 의지가 있어야 ARF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역 안보기구는 참여국 상호간의 이해와 상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ARF가 OSCE같은 기구로 성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말씀하신다면.

“참여 국가들이 함께 무언가 만들어내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모아지면 공동의 안보협력기구를 만들겠다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합의와 원칙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또한 참여국들은 상호간에 정기적인 접촉을 통해 대화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2 헬싱키 프로세스의 핵심. 상호 포용

―동북아 평화체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헬싱키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 활발해지고 있는데….

“각 지역은 그 지역에 맞는 환경과 정치적 조건, 서로 다른 국가들의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안보 기구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지역에 따라 안보문제에 대한 협의가 어려울 수도 있고 인도적 문제, 문화적 문제로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OSCE도 최소한의 합의틀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1975년 헬싱키 협약이 만들어지기까지 참여국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안보 등 현안문제에 대해 포괄적 협의를 해 나갔습니다. 그런 열망과 희망, 인내심이 없으면 힘듭니다.”

―헬싱키 프로세스 경험을 동북아에 응용하는데 있어 기본원칙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헬싱키 프로세스의 기본적인 특징은 참여국들이 정치적 의지를 갖고 논의를 지속했다는 점입니다. 끝없는 프로세스(never ending process), 참여국들간 토론을 통해 도출된 타협은 수용한다는 게 특징입니다. 인권문제의 경우, 참여국들간에 법의 지배, 문화적 차이, 제도의 차이 등으로 인해 이견이 있었지만 우리는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공감대를 확장시켰습니다.”

―OSCE가 서유럽에 대한 소련의 핵위협 속에서 태동된 것처럼 북핵이 동북아평화체제 구축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1973년 OSCE 형성초 독일은 분단된 상태였지만 헬싱키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1989년 통일 됐습니다. OSCE는 시간이 가면서 내용이 채워졌고 그 결과 역사적 변화를 이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6자회담도 동북아판 OSCE 프로세스의 단초일 수 있다고 봅니다. 각국이 안보문제에 대해 우선적 우려사항을 얘기하며 공감대를 확장시켜나가면 다른 문제도 풀리는 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6자회담 참여국중 미·러는 OSCE의 참여국, 한·일은 협력파트너인데 6자회담 과정에서 OSCE의 역할을 말씀하신다면.

“중국과 북한을 빼면 나머지 4개국이 OSCE관련국이기 때문에 북핵 검증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문제는 회담 참여국들이 해답을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

중국 얘기가 나온 김에 드 브리샹보 사무총장에게 티베트 민주화 등을 둘러싸고 프랑스에서 제기되고 있는 베이징(北京) 올림픽 보이콧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었더니 그는 이내 “나는 프랑스 외교관이 아니라 ‘국제 공무원’ (international civil servant)이기 때문에 개인적 입장은 얘기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래서 민감한 문제 대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니,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3 주변국과 긴밀한 대화로 기반 넓히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두달이 넘었는데 이번 방한 때 접한 인상을 얘기하신다면.

“어떤 나라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 각료가 구성되고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여러가지 이니셔티브를 취하게 마련입니다. 아직 그런 과정이 진행되는 만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주적 성향이 강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국제협력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제언을 하신다면.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유럽국가들은 지속적으로 OSCE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유럽연합(EU)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내정을 이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국은 때때로 주권국가로서 권위를 EU에 이양하며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같은 다자적인 행동과 접촉은 지속적으로 유럽의 정치환경을 만들며 유럽인들의 생각과 관점을 바꿔왔습니다. 이것은 때때로 어렵고 느렸지만 공동의 생각을 만들고 협력의 기반을 만들면서 함께 일하는 문화와 환경을 진보시켜왔습니다.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빠르게 진행되는 이런 대화와 협력의 경험이 개별국가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각국은 함께 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런 과정이나 경험이 아시아에서는 현실적으로 미약하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도 큰 것 같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각국의 권위가 아주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로벌시대에 들어 국가간의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런 시대 분위기에 맞춰 아시아 지역국가들과의 협력은 물론 지역협력기구, 국제기구 등과 좀더 깊은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유럽국가들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적어 한-유럽관계가 너무 소원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는데….

“만약 취임식 참석이 저조했다면 일정이 조급하게 통보됐거나 일정이 빡빡해서 생긴 일일뿐 양국관계의 소원함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은 유럽과 통상관계에서 중요한 상대이고, 현재와 미래에서 EU와 긴밀하게 접촉될 것으로 봅니다. 유럽은 이미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여해왔고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습니다.”

드 브리샹보 사무총장은 누구

1948년 프랑스령 모로코 라바트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롤랑 뒤마 프랑스 외무장관 비서실장으로 일한 뒤 86년 뉴욕 주유엔 프랑스 대표부 문정관으로 활동했다. 이어 장 피에르 슈브느망 국방장관의 수석 보좌관, 외무부 법률국장, 국방부 전략국장, 유엔 경제사회 이사회 담당 유엔 사무차장의 특보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05년 6월 OSCE 사무총장으로 부임하기에 앞서 1991~94년까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1995년 OSCE로 명칭이 변경됐다) 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하며 냉전해체 후 구 동유럽 및 소련지역 신생 국가들의 형성과정 및 외교안보적 협력 과정을 지켜본 헬싱키 프로세스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