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풍류 깃든 ‘선비정원’

이미지 크게보기500년 세월 담긴 산수화 한 폭 조선시대 한국 정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소쇄원은 계곡과 인공으로 만든 수로 등이 절묘하게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대나무의 고향 담양에는 소쇄원(瀟灑園)이 있다. 조선시대 중엽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인 소쇄원은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사림의 정신이 가득 담긴 곳이다. 최근 명승으로 지정된 소쇄원에는 문학 및 조경·건축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사진작가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순의 능주로 유배되어 죽게 되자 세속에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소쇄원을 조성했다. 이후 양산보는 이곳에서 글공부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소쇄원에서 지냈다. 또한 소쇄원은 조선중기 호남 지방의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들의 교류처 역할을 했던 올곧은 선비정원이라 할 수 있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으로는 곧게 뻗은 대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마치 터널을 통과하듯 약간 언덕진 길을 오르다 보면 고개 넘어 무엇인가 다른 세상이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온갖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언덕을 넘자 5월의 푸르른 신록 속에 500여년 세월을 오롯이 이겨낸 소쇄원의 누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초가 정자로 된 대봉대는 봉황을 기다린다는 의미인데 귀한 손님을 처음으로 맞이하던 정겨운 곳이다. 대봉대 아래에는 크고 작은 연못 두 개가 있다.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이 나무 속을 파낸 홈통을 통해 먼저 작은 연못을 채우고, 그 물이 넘치면 다시 도랑을 따라 내려가 큰 연못을 채우게 된다.

흙과 돌로 쌓아 올린 황토색의 담장을 따라 내원으로 들어가는 동쪽 담에는 ‘애양단’이라고 새긴 간판이 있다. 양산보와 사돈관계인 하서 김인후가 소쇄원의 아름다움 48가지를 노래한 ‘소쇄원 48영’의 시들을 목판에 새겨 담장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내용들을 제월당의 천장에 액자로 걸어 놓았다.

애양단을 지나면 넓적한 바위를 걸쳐 다리를 놓은 뒤 그 위에 담을 쌓아 올린 ‘오곡문’을 통과하게 된다. 위에서 내려온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 이름 붙여진 오곡문은 담 밑으로 터진 구멍을 통해 자연스럽게 계곡물이 흐르도록 되어있다. 오곡문 주변의 돌담은 제주에서 온 석공들이 쌓았다고 한다.

오곡문에서 제월당으로 향하는 오른쪽 위 담에는 ‘瀟灑處士梁公之廬(소쇄원 주인 양산보의 조촐한 집)’라는 우암 송시열 글씨의 문패가 박혀 있다.

일직선으로 난 꽃길 계단을 걷다보면 바로 제월당에 도착한다. 소쇄원에서 제일 위쪽에 위치한 제월당은 양산보가 거처하던 곳으로 좁지만 긴 안마당도 갖추고 있다.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으로 평소 양산보가 학문과 독서를 하던 곳이다. 또한 손님이 찾아오면 담소도 나누고 시도 읊으며 잠시 풍류도 즐겨 한층 더 멋스러워 보였다. 선비들은 밤이 되면 이곳에서 술 한잔 나누며 나라를 걱정했다고 하니 우국충정의 역사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제월당에서 조그마한 대문을 나서면 바로 아래에 소쇄원에서 가장 멋진 풍광을 느낄 수 있는 광풍각을 만난다. 비가 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으로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온돌방의 따스함과 마루의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광풍각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울창한 나무가 조화를 이뤄 깊은 숲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제,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며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던 소쇄원. 호남의 정신과 가사문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소쇄원은 옛 성현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절의가 풍기는 매우 아름다운 정원이다.

사진·글 = 박상문기자 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竹∼뻗은 입구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에는 대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비탈진 언덕을 넘으면 정원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