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전남 신안군 병풍도에 있는 증도초등학교 기점분교장의 주동기 교사, 5학년 오다애, 2학년 오준영, 1학년 백예닮 어린이가 교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난 어른이 되어도/하늘색 고운 눈망울/간직하리라던 나의 꿈/어린 꿈이 생각나네….’

1980년 5인조 혼성그룹 ‘로커스트’가 한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하늘색 꿈’의 노랫말 일부입니다. 1997년 당시 여고생 가수 박지윤이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지요. 문화일보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 노래 가사처럼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고운 눈망울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느 아이들이라고 눈망울이 맑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늘과 구름이 투영되는 해맑은 눈동자를 찾기에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낙도가 제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전남 신안군 증도의 부속 도서인 병풍도입니다. 밀물때는 섬과 섬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차 본도(本島)격인 병풍도와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신추도 등 5개 섬으로 갈라집니다. 하지만 썰물 때는 섬과 섬을 잇는 제방길이 뭍으로 드러나 한 개의 섬이 되는 신비로운 곳입니다. 150가구 350명이 거주하는 이 섬의 초등학생은 모두 12명입니다.

증도초등학교 산하의 병풍분교장(分校場)에 8명, 기점분교장에 3명, 소악분교장에 1명이 각각 다닙니다. 병풍분교장, 기점분교장 두 학교에서는 학년이 서로 다른 학생들, 즉 언니, 오빠, 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이른바 ‘복식 수업’이 이뤄집니다. 소악분교장은 전교생이 1명뿐으로 교사와 1대1 수업이 하루종일 이뤄지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곳입니다.

이들 섬에는 도시에 흔한 놀이공원이나 PC방 등이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은 ‘손바닥만 한’학교 운동장에서 각종 놀이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워나갑니다. 갯벌에서 게를 잡기도 하고 자전거로, 또는 걸어서 섬 한바퀴를 돌기도 합니다. 섬 전체가 놀이터인 셈이지요. 이곳에는 음악당이나 미술관, 영화관 같은 문화시설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요즘 같은 봄철에는 ‘지지배배’ 쫑알대는 제비의 지저귐, 바닷바람에 보리 이삭들이 서로의 볼을 비비며 ‘싸스락 거리는’소리 등 자연이 빚어내는 합주곡을 듣고 자랍니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 시간 시간 변화하면서 저녁 노을로 물드는 모습은 아이들의 뇌리에 여러 폭의 그림 또는 멋진 동영상으로 입력됩니다. 아이들의 정서가 이렇다 보니 도시에서 흔한 학교폭력이나 왕따 같은 것은 딴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25일 오전 7시. 전날 신안군 증도에서 하룻밤을 묵은 취재진은 증도 버지 선착장에서 병풍도로 가는 철부선 ‘제1증도호’를 탔다. 병풍도에 있는 병풍분교장, 기점분교장, 소악분교장 등 3개교의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다. 아이들과의 만남을 미리 축복이라도 하듯 산봉우리 위에서 내리비치는 아침 햇살의 서기(瑞氣)가 온누리에 가득찼다. 병풍도의 아침은 이처럼 햇살의 찬란함으로 시작된다. 적어도 병풍도 가는 뱃길, 바다 위에서의 아침은 그랬다. 배는 20분만에 병풍도 선착장에 닿았다.


학생 8명과 부부교사… 영어·컴퓨터까지 개별교육

#1 병풍분교

병풍분교장에서는 올해 3월 부임한 최상두(43)·이상금(42) 부부 교사가 8명의 학생들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다. “1946년 개교한 이래 학생 수 감소로 1993년 분교장으로 격하됐고, 작년 3학급에서 올해는 2학급으로 다시 줄었다”는 게 최 교사의 설명. 4학년(2명)·6학년(1명)을 한 학급으로 묶어 최 교사가 맡고, 2학년(4명)·3학년(1명)으로 이뤄진 학급은 이 교사가 맡는다.

최·이 부부교사는 전남 나주시에서 이곳으로 자원해 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도시의 큰 학교에서 근무하면 공문 처리 등 잡무에 시달리고 틀 속에 얽매이니까 애들 교육에 몰입할 수 없습니다. 10여년전, 지금은 폐교가 된 무안 양월분교에서 저희 부부가 3년간 함께 근무할 당시 소신을 갖고 애들을 지도했던 경험을 되살리려 이곳에 왔습니다. 결코 벽지 점수를 따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두 교사는 일단 개별지도가 가능한 여건을 적극 활용해 도시 학생들에 비해 학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힘쓰고 있다. 특히 방과후 활동 과목으로 리코더, 영어, 타자 연습, 컴퓨터(윈도, 워드프로세서, 인터넷), 독서 등 5, 6가지를 정해놓고 학생들이 일정한 수준에 오를 때까지 세심히 지도한다. 이 교사는 “10여년전 분교에 근무할 당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등 3종류 리코더의 합주를 가르쳐 전국 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며 “저학년 어린이들은 처음에 리코더 구멍 잡기도 버거워했지만 2학기가 되면 합주가 가능해질 정도로 실력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현(2학년)군의 일기장에는 개미를 친구 삼아 노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우리 집에서 개미를 키웠다. 개미한테 밥을 주었다. 개미가 잘 먹었다. 개미는 너무 지친 것 같다. 그래서 밥을 더 주었다. 나중에는 더 맛있는 것을 주어야겠다.’

2005년 목포에서 전학왔다는 이수지(6학년)양은 “누구의 엄마가 새엄마인지, 누구의 아빠가 안 계신지, 누가 가난한지 등 서로의 집안 사정을 잘 알지만 그런 것으로 서로를 놀리지는 않는다”며 “도시에서 흔한 왕따 같은 것이 여기에는 없다”고 말했다.


학생 3명… 학원 스트레스 없고 자연이 교육장

#2 기점분교

기점분교장의 학생은 모두 3명. 오다애(여·5학년)·준영(2학년) 남매를 주동기(30)교사가 맡고, 백예닮(1학년)군은 김목화(여·29)교사가 지도한다.

둘 다 미혼으로 올해 3월 부임했다는 주·김 교사는 “이곳에서는 인스턴트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다. 낙지, 굴, 고사리, 취나물, 둥굴레 등 자연산 음식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공기도 좋고 ‘학원 스트레스’등도 전혀 없다 ”며 “아이들의 건강성은 이런 환경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기점분교의 방과후 활동 중에는 독특한 것이 있다. 오후 5시쯤 되면 주 교사가 아이들 3명을 데리고 섬 한바퀴를 걸어서 돈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돌기도 하지만 걸어서 돌면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이 과정에서 고사리를 함께 따고 풀섶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야생화들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운동장내 시설로는 낡은 철봉과 시소, 밧줄로 만들어진 그네가 전부였지만 학생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즐겁게 뛰어논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예닮군의 동생 다은(유치원생)양이 놀러와 합류했고, 학교에서 키우는 흰색 강아지 ‘똘이’도 학생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좋아하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주 교사는 “이곳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과 다른 점은 감사할 줄 안다는 점”이라며 “주면 주는 대로 감사하고, 뭘 갖고 싶다고 떼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교생 1명… 선생님이 엄마·친구까지‘1인 3역’

#3 소악분교

소악분교장은 세 학교 가운데 바다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교문에 들어서니 100㎡ 남짓한 운동장이 있고, 그 위에 동백과 철쭉, 목서나무 등이 심어진 계단식의 화단, 그 위에 허름한 교사와 관사가 있다. 전교생이라고는 3학년생 김에덴양 1명뿐. 전교생 1명의 전통은 지금은 중학생이 된 김현우군이 입학했던 지난 2000년부터 이어져왔다. 에덴양은 현우군이 졸업하던 해인 2006년 홀로 입학했다.

2006년 3월 부임한 양영미(여·49)교사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7~8시까지 에덴이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낸다”며 “제가 선생님도 되고 엄마 역할도 하고 친구가 돼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에덴이는 5세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목포에서 생활하는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 살고 있어 양 교사를 엄마처럼 따른다고 한다.

에덴양은 양 교사로부터 1대1 지도를 받기 때문에 교과 성적이 평균 95점 이상으로 우수하다. 지난 3월부터 배우기 시작한 리코더 실력도 벌써 ‘구슬비’‘꼬까신’ 등 동요를 연주할 수 있을 만큼 물이 올랐다.

“에덴이가 1학년때 도시에서 전학 왔던 이길진이란 동급생 친구가 2학년때 다시 도시로 전학을 갔습니다. 외로움을 겪은 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 것 같습니다.” 양 교사의 말을 듣고 살펴보니, 교실 게시판에 붙은 에덴이의 그림들에는 어김없이 많은 수의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오후 5시가 되면 에덴이와 양 교사는 훌라후프, 산책, 달리기 등 운동을 1~2시간동안 한다. 훌라후프의 경우 두 사람이 시합을 하면 30분을 돌려도 승자를 가리지 못한다고 한다.

“선생님이 돼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에덴이는 떠나는 취재진의 차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교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며 해맑은 미소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

# 병풍도 가는 길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에 가려면 신안군 지도읍 사옥도 끝에 있는 지신개 선착장에서 철부선 ‘제1증도호’를 타야 한다. 승용차는 물론 화물차도 실을 수 있다. 지신개 ~ 병풍도간을 운행하는 배편은 하루 5편(편도 기준), 소요 시간은 40분이다. 병풍도는 얇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형상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해안을 장식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썰물 때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 1㎞ 길이의 병풍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지신개 선착장에서 배로 20분 걸리는 증도를 구경한 뒤 다시 20분 가량 배를 타고 병풍도에 가는 방법도 있다.

증도는 1976년 인근 해저에서 송·원대 유물선(신안선)이 발견된 곳으로 지난해말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중 한곳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드넓은 갯벌과 짱뚱어다리, 우전해수욕장, 휴양시설 ‘엘도라도 리조트’, 한반도 형상의 해송숲 등 볼거리가 많다. 6·25전쟁 당시 순교한 여성 전도사 문경준(1891~1950)씨의 영향으로 증도면 전체 인구 2160명 중 90% 이상이 기독교 신자인 점도 특이하다.

병풍도 (신안) = 정우천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최상두·이상금 부부 교사가 학생들과 잔디밭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양영미 교사와 3학년 김에덴 어린이가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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