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이건희(66) 삼성 회장과 임직원 등 10명을 모두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한 삼성 특검팀이 당초 ‘2인자’ 이학수(62) 부회장을 구속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회장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자기가 관심 없는 데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관심이 있는 부분은 남들보다 수십배 이상 집중하는’ 캐릭터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 관계자는 21일 “피의자나 참고인 조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먼저 말문을 트는 것”이라며 “이 회장을 조사한 사람이 이 회장이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와인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뜻밖에 대화가 풀린 계기는 승마 이야기였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에버랜드에 승마장도 있다는데 맞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말문을 연 이 회장은 승마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 장시간에 걸쳐 설명하고, 심지어 수사팀들에게 “꼭 승마를 배워보라”고 권유하기까지 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이 승마를 하면 허리가 꼿꼿이 펴지고 하체 운동에도 좋다고 한참을 설명해 나중에는 ‘이제 그만 조사 시작하시죠’라고 제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수사팀 관계자는 “(이 회장이)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는 남들보다 10배, 100배 더 집중하는 데 비해 관심 없는 분야에는 전혀 무관심했다”며 “똑똑하다기보다는 어느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일종의 천재 타입이라는 느낌”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말이 약간 어눌한데 왜 이 사람이 재계 최고 거물인지 나중에 알겠더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 등 삼성 측 사법처리 대상자 10명에 대해 특검팀이 모두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자신이 에버랜드 사건을 주도했다고 진술한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를 두고 수사팀 내에서도 한동안 찬반 격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일부 관계자가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는데 아랫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도 원칙에 맞지 않다”고 주장해 결국 불구속 기소로 결론 내려졌다. 증거 인멸을 시도한 삼성화재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 역시 검토됐으나 과장급 실무자부터 구속해야 한다는 점과 이후 사법처리에 부담이 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특검 수사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는 수사 시작 한달여가 지났을 때쯤 차명계좌 추적에서 자금 조성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삼성 임원들은 모두 자기 계좌라고 주장해 비자금 수사의 방향이 잡히지 않았던 시기가 꼽혔다. 특검팀 관계자는 “차명계좌 가운데 90%, 아니 95%는 추적했지만 비자금이 나오지 않았다”며 “확실한 건 삼성이 비자금을 만들었더라도 차명계좌로 관리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준웅 특별검사는 18일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회식 자리에서 수사 결과를 놓고 기자들과 격론을 벌였다. 조 특검은 기자들의 부실수사 논란 지적에 대해 “누굴 봐주기한 것도 아니고, 면죄부를 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어 기자들이 이 회장 등 전원을 불구속 처리한 사유로 ‘개인적 탐욕이 빚은 사건과는 다르다’고 판단한 부분을 지적하자 조 특검은 “경영적 판단이라는 게 있고 이번 일도 그런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이건희 잡아넣었으면 이번에는 언론에서 세상 물정도 모르는 특검 운운하지 않았겠느냐”고 주장했다.

김남석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