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신창섭기자

미국의 대표적인 아시아 관련 단체인 아시아소사이어티의 리처드 홀브룩(67) 이사장은 외교관 출신 외교안보전문가다. 미국 민주당이 올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국무장관 1순위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코리아센터 창립기념식 참석차 지난 1~3일 방한, 이명박 대통령과 특별면담을 하는 등 분주한 행보를 한 홀브룩 이사장을 만나 남·북·미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1 행정부가 바뀌어도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돼야

―15일 첫 미국 방문에 나서는 이 대통령이 집권 초 내건 화두는 ‘글로벌 코리아’인데 이를 위한 선결조건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이 세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를 위해선 남북관계를 먼저 잘 운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이 이뤄져야 동북아에서 한국의 번영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풀어야 글로벌 코리아라는 목표도 달성될 것입니다.”

―최근 들어 북한이 대남강경자세를 펴고 있어 남북관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해야 합니다. 남북이 대화를 하고 협상을 진행시키는 것만이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습니다.”

홀브룩 이사장은 1일 첫 만남 때엔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남북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일반론을 편 데 이어 2일 두 번째 만났을 때엔 대북인내심을 강조하면서 이 대통령과 면담할 때 나눈 얘기를 소개했다. 지난 2일 청와대면담 때 이 대통령과 대북정책에 대해 주로 대화를 나눴는데 이 대통령은 북한의 대남공격적 발언을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있지 않으며 북한의 대남공세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를 보였다는 것이다.

―신임 대통령들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집권 초 외교안보 측면에서 실수를 하기 쉬운데 이를 피하기 위한 조언을 하신다면.

“행정부가 바뀌어도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하는 게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조지W 부시 대통령이 2001년 집권하자마자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기조를 바꾼 것이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벌어진 북·미갈등은 정책일관성을 견지하지 않고 우방국과 조율 없이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생겨난 것입니다.”

홀브룩 이사장에게 “그런 얘기가 한국정부에도 적용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외교적 민감성을 직감한 탓인지 “어디까지나 미국 얘기를 한 것”이라며 얼른 선을 그었다. 그렇지만 그는 “신참대통령이 정부정책연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고정관념에 따라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곤란하다”면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한·미 양국에 가져온 파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로 일하며 한·미관계를 총괄, 조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주한미군철수론을 견지했고, 취임 후에도 이 같은 입장을 그대로 밀어붙이려 했는데 나는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로서 이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 2년을 소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북한의 도발움직임이 강화되면서 주한미군 철수정책은 포기됐지만 실무진에서 겪은 어려움이 아주 컸습니다.”

홀브룩 이사장은 카터행정부 때 주한미군 철수논란을 겪으며 한·미 양국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긴밀하게 협의해야 하고 “한·미 관계는 반드시 긴밀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회고했다.

#2 한반도는 성공 모델과 실패 모델이 공존하는 체제실험장

―2002년 북핵2차위기가 시작된 후 6년째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데 북핵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 사람들에게 북핵문제는 아주 크고 심각한 것이지만, 우리가 아시아로 시야를 넓혀볼 때 북핵문제는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비해 비교적 단순합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문제는 역사와 부족, 종교 문제가 혼합되어 복잡하지만 북핵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해법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풀면 됩니다.”

―그럼 6자회담에 대해서도 똑같이 낙관적인 전망을 하시는 건가요.

“나는 6자회담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시한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언제 해결될지는 북한에 달려 있습니다. 북한은 늘 어려운 상대였습니다만 궁극적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미 양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여국들은 점점 강해지고 있으나 북한은 매년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북핵문제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보시는 게 아닌가요.

“저는 60년대 초 국무부에 들어온 이래 한국을 지켜봤습니다. 지난 40여년을 되돌아볼 때 한국은 매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강해졌습니다. 반면, 북한은 지속적으로 퇴보하고 약해졌습니다. 이것은 어느 길을 택하는 것이 좋으냐는 것에 대한 분명한 답변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remarkable) 나라인 동시에 가장 성취를 많이 한 나라입니다. 한국이 보여준 성취와 성공스토리는 세계의 귀감이지만 북한은 정반대입니다. 한반도는 체제실험장 같아 남쪽엔 성공한 좋은 모델, 북쪽엔 실패한 나쁜 모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3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코리아 센터, 한미 가교 역할할 터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이사장으로서 2일 발족한 코리아 센터의 의미에 대해 얘기를 하신다면.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미국의 뉴욕, 로스앤젤레스, 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 4개 지부가 있고 아시아 각국에도 10개센터가 있습니다. 이번에 문을 연 코리아 센터는 아시아에 마련된 11번째 센터입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뭄바이에서 홍콩, 도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주요거점도시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아시아인과 미국인들의 관계를 강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시아 소사이어티 활동을 통해 아시아인들과 미국인들이 상호이해하는 기반을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활동은 미국과 아시아가 향후 협력을 강화해나가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 대통령도 코리아 센터가 앞으로 한·미 관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축하하더군요.”

―아시아 소사이어티서 7년째 일하고 있는데 아시아의 21세기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아시아에는 세계인구의 3분의 2가 살고 있습니다. 경제활동도 가장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어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시아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21세기 아시아의 번영은 아태지역이 미국과 함께 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아태지역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는 미국,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주장하는 키쇼어 마흐부바니 싱가포르 리콴유 행정대학원장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대선에 대해 전망하신다면.

“올해 미국대선은 우선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강도 높게, 가장 고비용으로, 가장 드라마틱하게 치러지는 선거로 기록될 듯합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공화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됐지만, 그는 4개월 전만 해도 가망이 없던 인물이었습니다. 민주당의 경우 두 명의 후보가 팽팽하게 맞붙고 있는데 각자 모두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첫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올지, 아니면 첫 흑인 대통령 후보가 나올지, 미국의 역사는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누가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고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한·미 관계에 대한 역사적 지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홀브룩 이사장은 누구

1941년 뉴욕 생. 브라운대 졸업 후 1962년 국무부에 들어가 40년가까이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자 협상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1977~1981)와 유럽 및 캐나다 담당 차관보(1994~1996)로 일해, “미 국무부 창설 이래 아시아와 유럽이라는 전혀 다른 대륙의 차관보를 역임한 첫 외교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1995년 미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21일간 진행된 보스니아 평화협상을 타결한 미국 측 협상가로 유명하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당시 협상의 차석대표로 활동하며 그와 호흡을 맞췄다. 2일 열린 아시아 소사이어티 코리아센터 창립기념식에서 힐 차관보는 홀브룩과의 관계를 ‘멘토(mentor·조언자)와 멘티(mentee·조언을 받는 이) 사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다. 홀브룩은 주독대사, 주유엔대사를 역임한 뒤 2004년 대선 때 민주당 존 케리 대선후보의 고문을 맡았고 올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외교고문으로 있다. 2002년부터 아시아 소사이어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홍구 전 총리, 한승주 아산정책원 이사장, 정몽준 한나라당의원 등과 친분이 깊다. 저서로 ‘전쟁종식을 위하여’(To End a War) 등이 있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