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전통적 표밭인 대구·경북(TK)에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이 심상치 않다. TK 지역은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고 할 만큼 인물보다 정당을 보고 선거하는 성향이 강한 곳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에 속았다”고 당 지도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이후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난 24일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으로 귀향하면서 TK 지역 여론은 인근 지역구인 (대구 서구, 달서 갑·을·병, 경북 고령·성주·칠곡, 구미 등을 중심으로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친박(친박근혜) 벨트’가 TK정서의 핵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벌어진 피살 사건도 ‘영남권 공천 파동’과 함께 TK 표심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로 부상할 조짐이다.

◆친박에 유리할 것 = 이날 피살 사건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 직후 만나 본 대구 시민들은 “정확한 수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지 않겠느냐”고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2006년 5월 지방선거 때 박 전 대표에게 가해진 ‘테러’를 떠올리는 시민들은 대체로 “이번 사건이 적어도 친박 출마자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구 서구에 거주하는 택시 운전사 김모(59)씨는 “이번 사건으로 TK 친박 출마자들에 대한 표 결집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40년간 대구에 살면서 매번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지만, 이번 선거 만큼은 다른 후보를 찍겠다”고도 했다. 대학생 조준일(30)씨는 “이번 사건이 정치 사안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만, TK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에서만 10년 넘게 살았다는 자율방범대원 김규완(42)씨는 “한나라당이 공천을 확실히 잘못했다. 많이 건방져졌다. 친박 후보를 찍어서 한나라당에 따끔한 맛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벽도 여전 = 그러나 이번 사건에도 불구, 여전히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를 위한 활동 공간을 확보해주려면, 이번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을 화끈하게 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북 구미에 직장이 있는 회사원 김모(38)씨는 “이번 사건에 설령 정치적 배경이 있더라도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조성재(33)씨는 “박 전 대표 동정론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전했다.

대구 달서을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이해봉 의원은 이날 선거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당내 공천 파동 등으로 한나라당이라는 벽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지역구 공략이 맨손으로 철벽을 때리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현역 지역구 의원에 ‘박근혜 프리미엄’을 업었지만, TK의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와 친박 인사들 간에 격전이 펼쳐지자 한나라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구 = 권로미기자 ro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