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어이 참, 이거 밥값 안내고 먹어도 괜찮나….”

19일 오전8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팔래스호텔 12층 라일락룸. 물류·해운업계 최고경영자(CEO) 17명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날 물류·해운업계 대정부 건의사항을 듣기 위해 조찬간담회를 마련했다. 조찬으로는 쌀죽에 생선구이와 김치를 곁들인 간단한 일식 도시락이 나왔다. 사회를 보던 신유균 한국물류협회 부원장은 “정부에서 내는 것이니 마음껏 드시라”고 말했다. 강주안 아시아나 항공 사장, 박정원 한진해운 사장등 참석한 물류·해운업계 대표들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날 사장님들은 거의 ‘난생 처음’으로 공무원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그동안 관행에 비춰볼때 정부 인사와의 간담회에서 밥값은 당연히 재계의 몫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보통 50만원 정도의 ‘거마비(강연료)’까지 쥐어 보내는게 다반사였다. 부패척결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런 관행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국토해양부는 ‘밥값은 정부가 내겠다’고 한국물류협회측에 통보했고 간담회가 끝나고 30여인분의 밥값을 카드로 계산했다. 심지어 정장관은 종업원이 자신에게 가장 먼저 조찬을 갖다주자 “손님들에게 예의가 아니니 재계 사장님들부터 먼저 서빙을 해라”고 지시했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파격은 지난 12일 대한건설협회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정장관 초청 조찬간담회에서도 나타났다. 간담회가 끝나고 국토해양부는 공무원 밥값은 정부에서 내겠다고 주장했다. 협회 초청이니 협회 경비로 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이날 밥값은 ‘더치페이’를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19일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CEO는 “아직은 밥이 안넘어 갈 정도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익숙치 않지만 형식이 바뀌면 내용도 달라진다”며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변하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교기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