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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당계 컨설팅 회사인 스코크로프트그룹의 대표로 일하는 아널드 캔터 (63) 전 미국무부 차관은 북·미 당국간 첫 대화로 꼽히는 1992년 북·미 고위급 뉴욕회동을 이끈 주역이다. 당시 카운터파트였던 김용순(1934~2003)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 공화당계의 외교안보전문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지 H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방한길에 동행한 그를 지난 13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나 4월 하순으로 예정된 캠프 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번 방문의 목적을 설명하신다면.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을 보좌하기 위해 왔어요. 이명박 정부가 어떤 비전으로 어떤 정책을 펴는지, 이 대통령은 새로운 한·미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겸사겸사 온 것이죠.”

조지 H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으로 일한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을 여전히 자신의 ‘보스’로 깍듯이 모시고 있는데 부시 전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방문을 마치고 제주로 이동한 11일 부시 전 대통령 일행과 합류했다.

―오는 4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내 기억으로는 미국 대통령이 갓 취임한 외국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대통령이 취임 7주만에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을 받은 것은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새정부를 얼마나 존중하는가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캠프 데이비드는 정상간에 비공식적인 회동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죠.”

―이 대통령이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정상이 서로 이해하고 익숙해지기 위한 자리라고 보면 됩니다. 서로의 공감대를 넓히는데 초점을 둬야지 뭔가 대단한 것을 합의하려고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4·9총선 일주일만에 미국 방문길에 오르는데 우리는 국내 정치가 외교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양국 정치 일정상 쉽지 않을 것이고, 미국측은 쇠고기 수입문제가 한·미 FTA비준 전에 풀리기 원하지만 이 대통령은 방미 전 이 문제를 풀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외교관 출신 안보전문가로서 이명박 정부에 조언을 하신다면.

“새정부는 경제적 규제를 뜯어고치는데 집중했으면 합니다. 미국 경제계에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대통령이 한국의 복잡한 규제를 많이 철폐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간 많은 개혁을 단행했지만 여전히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같은 풍토를 개혁해 외국기업과 한국기업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외국인 투자가 늘 것이고, 미국 기업인들이 한·미 FTA에 대해 진심으로 열망하게 하는 분위기도 생겨날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 외교를 주창하는데 외교에 있어 실용주의는 어떻게 관철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실용주의적 외교정책(pragmatic foreign policy)을 얘기할 때, 원칙을 존중하면서 어떻게 목표를 관철시킬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실용적 접근법이란 가치와 원칙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수단적인 개념일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위한, 어떤 원칙을 위한 실용주의냐가 중요한 것이죠.”

#2

―1992년 1월 김용순 북한노동당 비서와 뉴욕회동을 가졌는데 그때 주요의제는 무엇이었는지요.

“김 비서는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이어서 상당히 의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당시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북측이 준수할 경우 많은 혜택을 얻게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하기 위해 회동을 가졌습니다. 또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규정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죠. 그러나 몇달 후 북한은 IAEA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김 비서는 당시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지속적으로 주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때 김 비서는 2차 고위급 회동을 평양에서 갖자는 제안을 했는데 당시 미국으로서는 후속 접촉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김 비서가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 문제를 언급한 것은 2차 회동을 끌어내기 위한 유화적 발언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당시 회동에 국무부 차관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그 시점은 북핵위기의 서곡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992년 1월 뉴욕회동 후 3, 4월 쯤 우리는 북한이 플루토늄을 재처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만 그때 미국은 대선철이었고, 부시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저는 정부를 떠났습니다.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곧바로 북핵에 대해 대응하기 어려웠죠. 이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북핵문제가 처음으로 공식화되던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부시 행정부 말기부터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점을 파악하기 시작했는데 대응은 클린턴 행정부 초기부터 시작된 겁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출범하자 마자 북핵에 대해 대응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죠.”

#3

―김 비서와의 회동 후 16년이 흘렀지만, 한반도의 북핵위기는 여전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북핵은 ‘위기’라기보다 여전히 심각한 ‘문제’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최근들어 북측은 영변원자로 핵폐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비록 초기 단계지만 아주 희망적인 징후입니다.”

―북한과 시리아의 핵커넥션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 6자회담은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신고문제로 어려움에 빠져있는데 북한은 과거 핵활동뿐 아니라 과연 시리아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밝혀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과 시리아간의 핵협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북한이 외국과 핵협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IAEA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이죠.”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2월 하순 방한 때 북 - 시리아 핵커넥션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것이 6자회담의 장애물이 될까요.

“북한이 시리아와의 과거활동에 대해 털어놓을 의지가 있다면, 외교적 해결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솔직하게 밝히고 전모를 털어놓고 앞으로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 임기내 북핵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갈 것으로 보십니까.

“북한이 핵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부시 행정부는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차기 행정부와 협상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심각한 오류입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모든 정책을 재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다시 북핵문제에 집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더구나 차기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보다 북핵문제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가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현재 공화·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은 훨씬 더 강경한 대북관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심각한 오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나돌았던 대북 특사설에 대해 물었더니 캔터 대표는 “그런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완전한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그래도 고위급 채널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현재는 공식대화가 진행중인 상황이고, 모든 협상권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 있는 만큼 특사는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한반도 문제는 힐 차관보―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부시 대통령 3자 간에 직접적인 보고 라인이 형성되어 있고 이 라인을 벗어나는 특사는 필요하지도 않고 필요한 시기도 지났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