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전 개시 5주년을 열흘 앞둔 10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다섯 명의 미군 병사가 자살폭탄 테러로 숨졌다. 이날 사건은 지난해 미군 증파 이후 한동안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던 이라크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라고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수니파 반란세력은 쇠퇴하고 있으며 이라크 상황은 안정되고 있다”던 조지 W 부시행정부와 미군 당국의 주장이 무색하게 됐다.

지난 5년간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규모는 3980명으로 추산된다. 영국군도 175명 사망했다.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규모는 최소 8만명 이상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딕 체니 미 부통령은 내주 중동순방길에 나설 예정이며, 이라크 방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라크 자유 작전’의 수렁 = 부시 대통령은 2003년 3월20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테러지원을 종식시키겠다”며 이라크전을 시작했다. 곧이어 5월1일에는 이라크에서 돌아오던 항공모함에서 “임무완료”를 선언했지만 미국은 이때부터 이라크전의 수렁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쟁 개시의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WMD 위험은 처음부터 미국의 전통적 우방 프랑스와 독일의 극심한 이견을 불렀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를 동맹군으로 삼아 독·불 등의 반발을 묵살했지만 미국은 이라크 내에서 결국 WMD증거를 찾지 못했다.

◆ 미국 헤게모니 추락 = 이라크전은 대서양 양안의 갈등을 만들면서 전세계에서 미국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이라크전은 당장 중동에서 오랜 동맹국가들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딕 체니 부통령이 16일부터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터키를 잇달아 방문하는 것도 이라크전 5년 이후 더 복잡해진 중동상황을 반영한다. 부시 대통령은 체니가 중동 각국에 미국의 확고한 중동평화 비전을 거듭 밝히고 지지를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라크전 기획자인 체니의 중동방문은 이라크전 5년 이후 악화된 중동정세를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임마누엘 월러스타인 예일대 교수는 “이라크전은 쇠퇴하던 미국의 헤게모니를 확실히 추락시켰다”고 말했다.

뉴아메리카재단의 파라그 카나 연구원은 “부시 대통령의 집권 동안 미국의 세계 주도권이 무너지며 유럽연합(EU)과 중국까지 포함한 빅3로 재편됐다”며 “EU와 중국은 지정학적 핵심인 유라시아대륙의 양쪽 끝단을 점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고립돼 있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 친미중동국가 ‘난감’ = 이라크전은 미국의 의도와 정반대로 이라크를 ‘이란’의 우방으로 만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2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미군이 주둔 중인 바그다드를 공식 방문해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며 반미를 외쳤다. 이라크전의 근본적 배경으로 꼽히는 석유 문제도 거꾸로 가고 있다. 이라크전 5주년을 앞둔 미국내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5달러에 육박하는 등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