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셰익스피어에 대한 최고의 실험적 해석으로 유명한 국립극단(예술감독 오태석)의 ‘햄릿’과 댄스시어터 까두(〃 박호빈)의 창작무용 ‘로미오와 유령 줄리엣’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의 ‘햄릿’(14∼2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왼쪽 사진·02-2280-4115) = 독일 만하임국립극장 예술감독 옌스다니엘 헤르초크가 무대와 객석을 마치 마당극처럼 최단거리로 풀어내 도발적으로 연출했다.

헤르초크는 폭 4.5m, 길이 13m로 통로형 무대를 무대 뒤쪽 끝에서 객석 한가운데까지 놓았다. 또 통로형 무대 양쪽 옆으로 3열로 74석의 좌석을 배치, 보는 재미와 함께 수익성을 보완했다. 중극장을 활짝 터 대극장같은 시원함을 만들어내면서도 객석 한가운데에 실질적인 주무대를 마련, 배우들의 동선(動線)에 집중했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에서 배우가 등장하고, 무대 바닥을 뚫고 나오는 등 관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이 기발하다. 헤르초크가 이같이 깔아놓은 무대에서 김재건, 서상원씨 등 배우들은 물을 만난 듯 열정의 연기를 펼친다. 서상원씨는 우유부단한 햄릿이 아니라 치밀한 사고에 격한 행동주의자, 테러리스트다. 오필리어를 사랑하는 것이 마치 사디스트의 느낌이고, 어머니 거트루드에 대한 경멸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의 원수를 추격하는 격한 에너지의 흐름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음흉한 클로디어스 왕역의 김재건씨, 천진무구한 소녀에서 미쳐버린 열정의 오필리어역을 맡은 고아라씨의 파격적인 연기, 아버지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레어티즈역의 한윤춘씨의 연기도 폭발적이다.

권력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아프게 물어보는 감동의 표현주의 실험극으로 3시간이 잠깐 사이에 지나간다.

댄스시어터 까두의 ‘로미오와 유령 줄리엣’(11,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오른쪽·1588-7890) =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에서 다시 출발한다. 원작의 사랑과 갈등 구도는 같지만 현실과 영혼의 세계가 공존한다.

원작의 마지막 장면과 마찬가지로 로미오는 줄리엣이 진짜 죽은 줄로 오해해 독약을 마시고 쓰러지고, 깨어난 줄리엣은 독약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자 로미오의 칼로 자결한다. 그러나 로미오가 우연찮게 되살아나면서 이 작품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궁지에 몰리고, 줄리엣은 지상에서 못다한 사랑으로 로미오의 수호신이 돼 그를 돕는다.

이 작품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대중성. 말이 없는 무용감상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주목받고 있는 젊은 연출자 김관씨가 탄탄한 대본 구성과 함께 간략한 대사로 춤의 이해를 도왔다. 원래 연극배우 출신인 안무자 박호빈씨는 무용에 중심을 두고 연극을 오가며 재미있게 작품을 전개해 나간다. 춤 외에 연기와 대사를 공부하고 랩까지 소화해내는 무용수들의 다양한 개성과 장기자랑이 기대된다.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