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노벨평화상 후보 얘기가 오랜만에 다시 나오고 있다. 그것도 100만 명 이상이 한꺼번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이 희망 섞인 얘기는 태안 앞바다를 되살리기 위한 자원봉사와 관련해 정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기름 유출 사고 발생 77일 만인 2월21일로 자원봉사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 ‘태안의 기적’은 자원봉사자 규모에서 최단기간 세계기록이라고 한다.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는 “이번 성과는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공 사례로 외신이 자주 보도하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말이 100만명이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1m 간격으로 손을 잡는다면 그 사랑과 온정의 인간띠는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근년에 환경보호운동을 펼쳐온 인물들이 잇따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노벨상 도전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원봉사 수준, 더 나아가 기부문화의 현주소를 돌아보면 노벨상을 받겠다고 지구촌에 자천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 번이라도 자원봉사를 한 사람은 전 국민의 14.3%로 나타났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자원봉사를 교육과정으로 배우는 청소년층이라고 한다. 이 통계는 영국(51%), 호주(46%), 미국(44%) 등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친다. 특히 한 달 평균 4시간 이상씩 1년 이상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적다.

기부문화는 더욱 척박하다. 근래 들어 좀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부의 질적 수준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전체 기부금 중 기업 등의 기부금을 제외한 순수 개인의 기부금은 아직도 세계 최저수준을 맴돌고 있다. 2006년 개인 기부금 비율이 16.1%로 세계공동모금회 45개 회원국 평균 69.5%의 4분의 1에도 못미친다. 미국(75%), 일본(70%), 홍콩(90%) 등 기부선진국은 물론 중국(20%)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헌혈과 장기기증의 경우 아직도 국내 자급자족을 못해 외국인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국내 헌혈률이 최근 10년 동안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하나 한국인의 노벨평화상 후보 자격을 앞서 가로막는 게 있다. 아직도 틈만 나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그것이다. 한국이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자원봉사, 물질적인 기부문화 등 물심양면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그 맨 앞에는 고위공직자, 정치인 등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자리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보면 고위공직자들이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질 시비 단계조차 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다. 늘 반복되는 부동산 과다 보유, 이중국적·병역 문제, 논문 표절 의혹 등 국민 입장에서는 실망을 넘어 이제 신물이 날 정도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고위공직자가 재산과 병역 신고 등에 앞서 자원봉사 횟수와 기부금을 먼저 ‘신고’하면 어떨까. 인사 청문회에서도 현재의 네거티브 방식을 벗어나 그 선행을 최우선적으로 청문할 것을 제안한다.

도덕성과 인물 됨됨이를 알아보는 데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양심이 있는 장관 후보자라면 감히 청문회장에 나오겠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평소 자원봉사와 기부를 해왔다면 부동산 투기 등 청문회장의 단골 메뉴에 걸려 낙마할 이유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라면 인사 청문회가 도덕성과 자질 시비의 악순환을 벗어나 청문회 본래의 취지인 능력과 비전 등을 듣고 묻게 돼 그 품격도 절로 높아질 것이다.

이제라도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은 태안의 100만 자원봉사자, 그 민초들의 행렬 중 어디쯤에 서 있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여기에 별로 답할 내용이 없다면 4·9 총선에 나서지 말 것과 장관직 등 고위공직을 조용히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솔선수범은 못할망정 일반 국민에 앞서 한국인의 노벨평화상 후보 자격을 더 이상 좀먹어서는 안된다.

[[김영호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