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가 퇴직금보다 많은 보험금을 퇴직금 대신 타가는 ‘CEO 플랜’이 성행하면서 편법 절세 논란이 일고 있다. ‘CEO 플랜’이란 대표 명의로 회사가 보험료를 납부하고 퇴직 시 법인 정관을 개정, 퇴직금 대신 보험금을 타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같은 돈을 받더라도 세금을 최대 70%까지 절감할 수 있어 원래 퇴직금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 국내 유명 보험사들은 ‘법인 자산을 활용해 노후설계를 하라’며 앞 다퉈 이 보험을 팔고 있다.

◆ 법인 자산으로 노후설계 = 서울의 한 중소기업체 대표 A씨는 얼마 전 유명 생명보험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법인 자산을 이용해 퇴직 후 노후설계를 하라는 것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자산설계사 B씨는 A씨에게 “법인은 CEO의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대표 개인은 법인 자산을 활용해 노후자금을 준비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며 변액보험 상품을 소개했다.

B씨의 설명에 따르면 연봉 1억2000만원인 A씨가 10년 임기 후 받는 퇴직금은 6억원으로 월 500만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A씨가 퇴직금을 받는 대신 월 500만원짜리 위 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변액보험 가입에 따른 이자(연이율 5.5% 가정)에 비과세 혜택까지 받아 원래 퇴직금보다 2억원가량 많은 8억원을 챙길 수 있다. B씨는 “회사 입장에서도 보험료를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하면 과표를 낮출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험계약 시 계약자와 수익자는 법인, 피보험자는 대표 개인으로 해놓고 퇴직 시 수익자만 개인 명의로 변경하면 70%가량 세금을 안 내도 된다”며 절세 방안을 소개했다.

◆ 생보사 내부 문건 = 국내 유명 생보사 7개업체 중 4곳은 이 같은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28일 문화일보가 단독 입수한 ‘법인 대표/임원 퇴직소득 확보제안’이라는 제목의 X생명보험사 내부 문건은 “법인 자산을 활용해 노후설계 및 퇴직금을 준비하라”며 CEO 플랜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만들어진 총 16페이지짜리 이 문건에는 ▲법인 자산을 이용한 노후설계법 ▲보험을 퇴직금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관을 개정하는 예시 ▲보험료의 비용처리를 통한 법인 절세 방안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또 수령 보험금이 6억원일 경우를 상정, 수익자가 개인 명의면 2억310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법인일 경우 4900만원만 내면 되는 획기적인 절세 방안까지 소개돼 있다. X사 관계자는 그러나 “문건에서 예시만 들어놨을 뿐 실제 수익자를 법인에서 개인으로 변경하도록 지시하지는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와 유사한 상품을 판매 중인 Z사 관계자는 “사업승계나 법인세 절감, 노후대책 등 차원에서 퇴직금이 보험상품에 들어가도록 CEO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일 뿐,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자산설계사는 “수익자 변경으로 상당한 금액을 절세할 수 있어 상품 판매 시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게 사실”이라며 “업계 내에서도 다소 논란이 되는 상품”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삼성생명 측은 이 같은 논란이 일자 2007년 이후 이와 유사한 보험상품의 판매를 중지했다.

김건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부장은 “절세 등을 이유로 CEO 보험이 이용되는 건 탈세에 가까운 편법”이라며 “기업윤리 차원에서 큰 문제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종환 금융감독원 조사관은 “보험계약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윤석만기자 sa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