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경기 시흥시 한국산업기술대(KPU) 기술혁신센터 5층에 위치한 극단(劇團) 기린 연습실.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지독한 땀냄새와 함께 “으악” “어이쿠”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상범(47·연출가 겸 극작가) 대표와 단원 11명은 오는 3월20일부터 순수창작 소리극 ‘옴’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이날도 4시간째 아크로바틱(무술동작과 기계체조가 혼합된 기초체력 과정)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옴’은 드럼, 조개껍데기 등 사물의 소리와 배우들의 동작만으로 만든 창작 연극으로 무술 동작이 많아 아크로바틱 같은 고도의 육체 훈련이 필요하다. 배우들은 한국무용이나 마임, 발레도 배운다. 배우 김두영(여·25)씨는 “소리 창작극은 서울 대학로 관객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시화공단 노동자들과 이웃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라며 “오늘 흘린 땀만큼 관객들도 배우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흐르는 땀을 훔쳤다.

지난 2002년 이상범 대표가 창단한 극단 기린은 2006년까지 5년간 서울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잘나가던 극단으로 대학로 창조아트홀 등에서 ‘한단고기’, ‘성(聖) 가족’ 등을 성황리에 공연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월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 이 지역 유일한 문화공간 ‘KPU 아트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상설공연장과 연습장이 마련되자 과감하게 “공장행”을 결심했다. 이 대표는 “대학로에서 시화공단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저더러 미쳤다고 했습니다. 대학로를 마다하고 공장지대로 내려가냐고요. 하지만 그 친구들이 우리가 사막에 꽃을 피웠다고 평가할 날이 올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의욕과 달리 문화의 오지에 상설 공연을 올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한단고기’등 4편을 무대에 올렸지만 공장 노동자들과 주민들의 반응은 썰렁해 300석 극장에 단 한 명의 관객만 두고 공연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관객이 없어 공연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창단 멤버인 배우 이지연(여·32)씨는 “열심히 공연을 준비해 무대에 올렸지만 관객이 없어서 공단 주민들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관객이 한두명씩 늘고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온 거친 손으로 배우들의 손을 꼭 잡아 주면서 좌절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배우 강신혜(여·27)씨는 “지난해 정해진 공연을 정해진 시간에 하다보니 공단 노동자들도 시간이 갈수록 연극을 이해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며 “그때는 연극의 지평을 넓힌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 대표와 극단 기린은 창작극‘옴’을 시화공단에서 만들어서 대학로를 거쳐 세계로 나가는 작품으로 키울 계획이다. 시화공단을 자동차,정보통신(IT) 부품소재 공장지대에서 문화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고 있다.

이상범 대표와 단원들은 “우리가 만드는 연극이 문화의 부품소재가 돼 한국인, 세계인의 가슴에 심고 싶다”고 다짐했다.

시흥 = 손재권기자 gjac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