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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명문사립대 윌리엄스 앤 메리 대학의 미첼 리스(50) 국제담당 부학장은 미국 공화당의 보수주의적 세계관을 견지하는 외교전문가다. 45세가 되던 지난 2003년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에 의해 역대 최연소 국무부 외교정책실장으로 발탁, 미국의 외교정책 및 한반도 정책 밑그림을 그렸던 전략가이기도 하다.

새정부출범에 앞서 방한한 그는 이명박 정부외교안보팀인사들과 심층대화를 한 데 이어 지난 18일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과 함께 한·미동맹의 새 비전을 모색하는 ‘한·미전략포럼’보고서를 발표했고, 19일 아시아재단 신년회에 참석, 미국의 새 아시아정책을 주제로 연설도 했다. 학자출신 외교전략가로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외교 충돌을 현장에서 지켜본 리스 부학장을 이날 신년회에서 만나 이명박시대 남·북·미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한국의 새 외교를 이끌 이명박정부 외교안보팀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에 방한기간중 만나보니 한·미동맹에 대해 아주 진지하고 사려깊게 생각하고 있었고, 세계에서 한국이 할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백악관과 국무부 등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새 외교안보팀과의 회동에 대해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김병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대해 묻자 “질문하기 위해 숙고할 정도로 신중하고 침착한 인사”라고만 했을 뿐 말을 아꼈다.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팀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새외교안보팀은 노정부때보다 한단계 격상된 질 높은 한·미동맹을 원하는 것 같고, 국제사회에서의 역할도 좀더 확장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듯했습니다. 한국은 세계의 모델 국가입니다. 한국이 지난 한 세대 동안 이룬 경제적 기적과 민주화는 세계인들에게 성공스토리인 만큼 이제 그 경험을 세계에 전파해야 합니다.”

―질 높은 한·미동맹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지난 18일 공개된 한·미전략포럼 보고서를 꼭 일독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리스 부학장의 답변은 간결했지만 그가 권한 한·미전략포럼 보고서에는 노정부때의 외교적 편향성을 넘어서기 위한 구조적 조언이 담겨 있다. 이 보고서는 그가 재직 중인 윌리엄스 앤 메리 대학, 한국의 동아시아재단(이사장 정몽구), 연세대 통일연구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것인데 노정부때의 한·미동맹에 대해 “한국방위의 한국화(Koreanization of Korean defense)라 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이행과정을 밟았다”고 평가한 뒤 한·미동맹의 격상방안으로는 ▲북한에 대한 이견을 축소하고 전략적 공감대를 마련할 것, ▲동북아에서 중국에 대해 공동접근 전략을 수립할 것 등을 제시했다.

―오는 4월로 예정된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선결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현재 워싱턴의 분위기는 아주 고무되어 있습니다. 상하 양원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축하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이같은 기대감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만큼 과거(김대중 - 부시, 노무현 - 부시의 첫 정상회담)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시대 한·미관계를 총평하신다면.

“노정부는 아프간 및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 주한미군기지 이전협상 등을 통해 한·미군사동맹을 전환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갈등도 있었고, 논란도 있었지만 노정부가 이룩한 성과는 시간이 지나면 좀 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정부가 동맹보다 자주를 강조하면서 한·미동맹전선에 위기가 노정됐다는 게 일반적 평가인데.

“동맹국가간에도 이견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미양국 관계가 좋은 친구이자 가족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구나 가족은 때때로 특정현안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있고, 이 경우 논쟁하고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같은 갈등이 친구나 가족관계 자체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무부 외교정책실장으로 재직할 때 한국측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기해 파장이 컸는데 그 논란이 남긴 교훈을 말씀하신다면.

“동북아 균형자론은 미국을 아주 당황하게 만들었고 깊은 우려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것은 한·미관계를 약화시키는 개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정부측은 당시 한·미동맹에 대한 깊은 고려나 이해 없이 그 개념을 제시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현실화하지 않은 채 레토릭으로 끝나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한국의 외교정책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 한·미동맹에도 상처를 주지 않았습니다. 노정부는 동북아균형자론을 제시하면서도 아프간 및 이라크 파병을 했습니다. 현재적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노정부가 실행하지도 못할 개념을 제시해 한·미간에 불필요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몰고온 것은 실수라고 봅니다. 그런 일이 이명박정부에서는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북한의 핵신고지연으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졌는데, 북핵협상의 전망은?

“이명박 정부는 상호주의적 대북정책을 견지하면서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식량지원은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 움직임은 남북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미국정부도 대북식량지원에 나설 것으로 봅니다.북핵협상이 단시일내 완료될 것으로 보면 안됩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한·미전략포럼 보고서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심(strategic patience)’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얼마나 인내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북한이 변할 때까지.”(웃음)

―북한이 변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5년? 10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6자회담틀 속에 함께 있는 한 북한은 외톨이입니다. 북한이 반응을 해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북한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그들이 그것을 선택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아주 담담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부시 대통령 임기내 북·미관계는 어느 정도까지 진전될 것으로 보십니까?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6자회담은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일관성을 지키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가속되고 있고 경제도 아주 나쁜 상태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핵실험까지 했습니다. 북한은 또다시 우리를 화나게 하고 도발하려 하겠지만 북한이 더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확신을 갖고 차분하게 함께 기다린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11월 대선과 차기 정부 외교정책에 대해 전망하신다면?

“지금 민주당 진영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간에 아주 팽팽하고 흥미진진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아주 놀라운 민주주의의 진전입니다.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이 대선후보로 결정됐고,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총재 등이 자문을 해주고 있습니다. 오바마 후보의 경우 앤서니 레이크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도와주고 있고, 클린턴 후보는 남편 정부에서 일했던 관료들이 대부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바마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동맹의 가치와 중요성,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외교안보에 대해선 더욱더 많은 숙제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대선을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미동맹, 미국외교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가치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이들이 없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리스 부학장은 누구?

미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성장했다. 매사추세츠주의 명문사립대 윌리엄스 칼리지를 졸업한 뒤 플레처 법률 및 외교대학원에서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 워싱턴의 코핑턴 앤 벌링 법률사무소에서 은행 및 기업 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1999년부터 윌리엄스 앤 메리 대학에 몸담고 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와 아들 부시 행정부때 각각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특별보좌관(1988~89), 국무부 외교정책실장(2003~2005)으로 일했고 올 미국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경선포기 선언을 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네바 북·미핵합의에 따라 설립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법률고문으로 활동하며 대북경수로 제공협상에 관여한 경험도 있어 한반도 문제에 밝은 편이다. 저서로 ‘재갈 물려진 야망:왜 각 국가들은 핵무기 없이 핵능력을 억제해야 하나’, 공저로 ‘핵의 티핑 포인트:왜 각 국들은 핵 선택을 재고해야 하나’ 등이 있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