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후손으로 인해 조상들이 남겨준 귀중한 문화재가 나라 안팎에서 계속 떠돌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달 평균 241점의 문화재가 도둑질·도굴의 대상이 되면서 조상의 문화유산이 아직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나라 밖으로는 해외 반출 문화재가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이역만리에서 떠돌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불행히도 세계적으로 대표되는 문화재 약탈 피해 국가 중 하나다. 약탈 등으로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7만6000여점이지만 환수 노력은커녕 언제 누구한테 어떻게 약탈당했는지 그 경위 파악은 물론 반출 목록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600년 역사와 조상의 혼이 담긴 국보 제1호 숭례문이 10일 어이없는 방화로 소실까지 되었으니 그 죄스러움에 더 이상 고개를 들기가 어렵게 됐다.

문화재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웅변해 주는 역사의 징표다. 조상이 남겨준 유물을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은 후손의 의무이기 이전에 어쩌면 ‘태생적 본능’일 것이다. 그런 본능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자문하고 나라 안팎의 문화재 현주소를 돌아보면 혹 후손들이 그동안 소리없이 숭례문의 서까래, 벽돌 하나하나를 슬금슬금 빼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숭례문 방화사건에서 보듯 문화재를 화재 사각지대에 방치해온 것은 물론 아직도 많은 문화재가 돈벌이의 대상이 되는 패륜조차 제대로 근절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 7월말까지 신고된 도난·도굴 문화재는 1만6157점이다. 한달 평균 241점씩, 하루 평균 8점씩의 문화재가 주인의 손을 떠나 떠돌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공식 신고를 집계한 것으로 숨겨진 것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단적으로 지난해 10월에는 전국의 향교, 재실, 고택 등을 돌며 무려 100여차례에 걸쳐 3000여점의 보물급 문화재를 털어온 역대 최대 규모의 문화재 절도단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 중 900여점은 아예 회수조차 되지 못했다. 문화재 보호·관리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해외 반출 문화재도 일찌감치 약탈됐다는 점 말고는 그 관리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한국은 그리스, 이집트, 베트남, 중국 등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문화재 약탈 피해가 많은 국가 중 하나다. 전세계 도처에 한국 문화재가 흩어져 있는데 지난해 8월 기준으로 해외 반출 문화재는 전세계 180여 소장처에 7만6143점이다. 이는 중앙박물관 소장 15만여점의 절반이다. 개인 소장품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늘어난다.

한국의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는 20여개국. 단연 일본이 45%인 3만4369점으로 가장 많다. 문제는 아직까지 반출 문화재 목록조차 마련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확인한 문화재는 전체의 13.6%인 1만362점에 그치고 있다. 언제 어떤 경로로 몇 점이 반출되었는지 증빙 자료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아예 반환 요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반환 자체가 지지부진해지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의 문화재 관리 실상이다. 아직도 가난 등으로 국보급을 포함한 문화유산이 헐값에 해외로 팔려나가고 있다. 고려청자가 하도 많이 밀반출돼 국제시장에서 가격이 폭락할 정도라고 하니 결코 수수방관할 일만도 아니다. 북한 문화재도 분명히 우리 문화재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 문화재가 유출되기 시작하면서 신의주와 인접한 중국의 단둥(丹東) 등에 거대한 북한문화재 암시장이 형성돼 왔다. 해외 반출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도굴과 밀반출로 인해 그 문화재의 ‘족보‘조차 사라진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굴되었는지가 불명확하니 그 역사적 가치도 함께 소멸되는 것이다.

숭례문 소실은 어쩌면 조상들이 문화재를 계속 떠돌게 하는 후손의 불효를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이쯤에서 회초리를 든 듯싶다. 국보 제1호 유물을 통한 조상들의 따끔한 유훈(遺訓), 유지(遺志)를 받들기 위해서라도 숭례문 복원과 동반해 나라 안팎의 문화재 관리·보존의 전반 대책을 ‘복원’해 나가야 한다.

[[김영호 / 논설위원]] yah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