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7일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을 기각함에 따라 노 대통령은 헌법에 명시된 헌법재판 5개 중 4개 재판의 직·간접적인 당사자가 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노 대통령은 재임기간 5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헌법논란에 휘말렸으며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 지지자들과 반대세력간의 의견 충돌이 국론분열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 유례 없는 헌법재판 ‘4관왕’ = 노 대통령과 헌법재판소의 ‘인연’은 4년전인 2004년 3월, ‘국민이 압도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노 대통령 발언으로 촉발된 대통령 국회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시작됐다. 헌법재판소는 같은 해 5월 탄핵심판을 기각했지만 ‘대통령은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구속받는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탄핵 심판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 2004년 10월 헌재는 노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법률심판 사건에 ‘관습헌법상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어 노 대통령은 2006년 9월 국회의원 23명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국회 동의권을 침해했다며 낸 권한쟁의 심판의 상대방이 됐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선관위로부터 선거중립 의무 준수 촉구조치를 받자 ‘개인의 권리’인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위헌법률심판과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헌재가 처리하는 재판 중 정당해산을 뺀 나머지 심판에 모두 관련되는 ‘헌법재판 4관왕’을 달성했다.

◆“헌재 위상 높였다” 비아냥도 = 노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법률가 출신 대통령으로 법치주의 확립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을 준수한다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가 무색하게 ‘그 놈의 헌법 때문’이란 발언에 이어 헌법재판 청구에 나섬으로써 ‘헌재 위상을 한단계 높였다’는 비아냥 섞인 지적을 받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지 20여년 동안 한번도 행사되지 않은 탄핵심판과 대통령의 헌법소원 등이 제기되면서 결국 헌재의 위상을 한단계 높인 셈”이라고 비꼬았다. 또 다른 헌재 관계자도 “정치적으로 해결할 사안을 헌법재판소로 끌고 옴에 따라 결국 헌법 교과서만 두껍게 만든 꼴이 됐다”며 “노 대통령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법 제도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백기기자 bki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