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을 기리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종교일 듯싶다. 특히 한국인은 큰일을 앞두고는 조상의 산소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반대로 집안에 큰 우환이 닥쳤을 때도 조상의 산소를 떠올리게 된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맞아 한국인은 이제 ‘잃어버린 10년’의 긴 우환을 딛고 선진경제로 재도약해야 한다는 결의에 차 있다. 그 결의와 기대가 너무 크고 우환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일까. 본능적으로 대한민국의 조상 산소를 한번쯤 돌아보게 된다.

‘잃어버린 10년’의 반대말은 아마도 ‘한강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세계 유례 없는 그 기적의 고도압축 성장과정에서 피를 흘리며 희생된 근로자는 얼마나 될까. 지난 반세기 동안 자그만치 376만5500명이 희생되었다. 사망자 7만70명을 포함한 이 통계는 산업재해보험법이 제정된 1964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의 공식집계다. 그 이전의 희생과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근로자까지 합친다면 더욱 늘어난다.

그 희생자를 추억하고 추념할 수 있는 조상의 산소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공원에 가보면 공원 한 구석에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근로자 376만여명 모두를 추념하는 단 하나의 공간이지만 너무나 초라해 ‘위령탑’이라는 말을 쓰기조차 민망하다. 기껏해야 수십평 대지 위의 이 위령탑은 그 규모가 웬만한 집안의 조상 산소만도 못하다. 그렇게 옹색하다 보니 공원을 찾는 시민들조차 그런 위령탑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1년 내내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한다. 향로가 있기는 하지만 향불이 꺼진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향로 안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가 눈에 들어올 정도다. 이만저만한 불효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나라 경제발전을 위하여 산업현장에서 땀흘려 일하다 불의의 재해를 입은 근로자들의 큰 공적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탑을 세웁니다’라는 비문을 읽어내려가기가 더 없이 죄송스럽다. 376만여명의 희생을 이렇듯 수십평의 위령탑에 몰아넣었으니 혹 ‘잃어버린 10년’의 우환이 후손의 불효와 연관되지 않았나 하는 께름칙한 생각도 고개를 든다.

돌아보건대 한국인은 지난 반세기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한강의 기적을 기억하고 그 희생자를 추념하는 공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셈이다. 선진국이 200년에 이룬 산업화를 짧은 기간 내에 이루다 보니 그만큼 희생도 더 컸을 것이다.

이 기회에 위령탑이 들어서 있는 보라매공원 전체를 추모공원화하든지 아니면 한강변에 그 기적을 담아내는 공원을 마련해 그 안에 위령탑을 세우는 것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사망자 7만70명의 이름 석자만이라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후손들에게 학습효과는 물론 한국을 배우고자 하는 제3세계 국민 등 외국관광객에게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명소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역대 대통령 등 정치지도자들은 때만 되면 국립현충원을 찾는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백범기념관을 자주 찾기도 한다.

이제 과거 이념의 시대는 갔다. 경제살리기를 제1의 국정목표로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대통령’ 그 기치에 맞게 뒤늦었더라도 산업역군의 위령탑을 찾아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 더구나 과거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한강의 기적의 일역을 담당했기에 누구보다 산업현장에서 근로자가 흘린 피의 희생정신을 잘 알 것이다.

보라매공원은 국립현충원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국립현충원 참배길에 그곳을 들르기 바란다. 그 조상의 산소 앞에서 차기정부의 제1과제인 경제선진화의 결의를 다지고 그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후임 대통령 등도 그곳을 찾게 되고 이념이 경제와 민생을 밀어내는 오늘의 우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기왕이면 제대로 된 위령탑 하나 건립하기를 제안한다. 그동안 못난 후손의 불효도 사죄할 겸 전 국민의 이름으로 헌정되어야 하기에 반드시 ‘국립’이어야 한다.

[[김영호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