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과 주변’의 개념으로 동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조망하는 대규모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은 10, 11일 이틀 동안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중심과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몽골 등에서 83명(국내 30, 해외 53)의 학자가 참여, 총 46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다양한 시각을 드러냈다. 이 중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진단·조망하는 대표적 발표문을 소개한다.

◆왜 중심과 주변인가 = 중심과 주변은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는 주제로,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중심과 주변의 문제는 역내 국가의 역사적 관계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아르헨티나의 경제학자인 라울 프레비시가 1964년 출간한 ‘개발을 향한 새로운 무역정책’에서 처음으로 소개한 ‘중심과 주변’은 개발경제학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최근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이 관심이 되고 있지만, 근대 이전 주변적 지위에 머물러 있던 한국, 일본,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의 역량이 증대됐다는 점 또한 중시해야 한다. 이러한 주변부의 성장은 중심과 주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는 ‘동아시아의 중국 중심주의와 그 극복의 과제’라는 제목의 기조 발제를 통해 한·중·일 3국의 역사에서 중국 중심적 시각이 어떻게 극복돼 왔는가를 고찰했다.

임 교수는 박지원, 홍대용 등 실학자들이 중국 중심의 천하관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중국 천하관은 장례절차를 치르지 않은 채 묻혀버린 셈”이라며 “역사적 청산작업을 거치지 않고 매몰된 상태는 언제 망령이 되살아날지 모르는 불안요소를 항시 잠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최근의 동북공정을 비롯한 중국의 주변지역에 대한 역사왜곡과 문화공세는 이러한 변종의 출현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따라서 “중국중심주의 극복이란 역사적·사상적 과제는 일국적 차원을 넘어선, 그야말로 동아시아적 차원의 문제”라며 “이 과제에 일찍이 착안한 한국 실학자들의 이론적 문제제기의 선각적 의미를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쑨진지(孫進己) 선양(瀋陽) 동아연구중심 교수는 ‘동아시아권의 미래와 역사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동북아 각국은 동북아 경제권을 형성하는 길을 걸을 것이고, 결국 동북아 경제문화권을 형성할 것”이라며 “이는 (장기간에 걸쳐) 동남아 경제문화권과 함께 거대한 동아시아 경제문화권으로 합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지금 형성하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문화권과 역사상의 동아시아 조공 체계는 다르다”며 “역사상의 조공 체계는 국제 관계에서 발생한 최초의 형태이며, 이는 선진 핵심국가와 주변의 상대적으로 낙후한 수많은 국가가 형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형성된 경제문화권은 식민 체제가 와해된 것을 기반으로 주변 지역 각국이 경제 문화의 밀접한 관계와 교류를 근간으로 형성한 것으로 완전히 평등한 관계”라고 분석했다.

쑨 교수는 동북공정과 관련, “현재 (동북아) 각국의 공통된 근본 이익은 평화 발전”이라며 “역사적인 일부 문제는 (각국의) 공통된 근본 문제에 비해 차선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모두가 이런 사소한 차선의 문제로 인해 각국의 공통된 근본적 이익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은 실제로 현실적인 영토 주권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의 과제는 무엇인가 = 마크 셸던 미국 코넬대 교수는 ‘세 개의 역사적 전환기와 동아시아에서의 중심과 주변’이라는 기조 발제를 통해 ▲16~19세기 중국 중심의 조공체제기 ▲1914~1945년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대동아 공영권 주장 시기 ▲1945년 이후 미국 주도의 팍스 아메리카나 시기로 구분, 동아시아에서의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검토했다.

셸던 교수는 중국이 조공무역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뒷받침했던 반면 일본과 미국의 지역질서 주도기에는 전쟁과 약탈, 그리고 역내 국가 간의 불안정성이 증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동아시아의 자본주의화와 역내 교류 및 협력의 증대, 이전 시기와 구분되는 다자간 이니셔티브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동아시아의 부상을 위해 역내 국가 간의 파편화 현상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