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모두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죠. 그래서 고전을 소재로 한 영화나 연극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고전을 거의 보지 않으니까요. 이 때문에 고전은 해석, 즉 요리가 중요합니다. 잘 만 요리하면 고전은 현대에 필요한 모든 감동과 교훈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고전을 영혼의 안식처라고도 부릅니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 만하임국립극장 예술감독 옌스다니엘 헤르초크가 연출한 국립극단의 ‘햄릿’(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사진·02-2280-4115)은 재료의 맛이 온전히 살아있는 모처럼의 성찬입니다.

우선 중극장 무대를 대극장처럼 넓게 쓰고, 관객과의 거리는 소극장 수준인 독특한 ‘식탁세팅’이 맛깔납니다.

헤르초크는 일체 무대의 장식을 걷어냈습니다. 무대를 시원하게 연 다음 중앙 객석 4줄을 잡아 먹어 폭 4.5m, 길이 13m로 통로형 무대를 무대 뒤쪽 끝에서 객석 한 가운데까지 놓았습니다. 통로형 무대 양 쪽 옆으로 3열로 74석의 좌석을 배치, 보는 재미와 함께 수익성을 보완했습니다. 중극장을 활짝 터 대극장같은 시원함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객석 한 가운데서 실질적인 주무대를 마련하고 극장의 모든 출구를 이용해 동선(動線)을 집중했습니다. 얼핏 마당극 분위기를 형성, 무대와 객석을 최단거리로 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에서 배우가 등장하고, 무대 바닥을 뚫고 나오는 등 관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 무대에서 배우들이 맘껏 ‘놉니다’. 몇 걸음 가서 돌아, 시선은 어디에 두고 하는 정확한 연출지시가 없습니다. 그저 배우의 에너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햄릿역의 서상원씨는 물을 만났습니다. 우유부단한 햄릿이 아니라 치밀한 사고에 격한 행동주의자, 테러리스트의 모습입니다. 오필리어를 사랑하는 것이 마치 새디스트의 느낌이고, 어머니 거트루드에 대한 경멸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추격하는 에너지의 흐름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형을 죽이고 형수를 차지한 음흉한 클로디어스 왕역을 맡은 김재건씨는 이제 왕역으로 카리스마가 붙은 모습입니다. 최근작 ‘태’에서 세조역을 맡아 응축시켰던 거친 에너지를 마음껏 뿜어냅니다. 왕비 거트루드에게 펼치는 거친 애정표현을 보면서 김씨가 그동안 저 에너지를 어떻게 숨겼나 의문이 듭니다.

천진무구한 소녀에서 미쳐버린 열정의 오필리어역을 맡은 객원 고아라씨의 파격적인 연기, 아버지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레어티즈역의 한윤춘씨의 연기도 폭발적입니다.

이 작품은 햄릿 선왕 유령이 남긴 왕관으로 시작합니다. 극중극 배우와 호레이쇼를 제외하고 등장인물 모두가 죽은 가운데 왕관만 남습니다. 권력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아프게 물어보는 감동의 표현주의 실험극으로 3시간이 잠깐 사이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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