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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뉴엘 페스트라이시 (43) 대전 우송대 국제대부교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 신세대 동아시아 전문가다.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문명학을 전공한 뒤 조선후기 실학사상에 매료되어 아예 한국학 연구자가 됐다.

그가 준 명함에는 이만열(李漫烈)이라는 고풍스러운 한국 이름까지 써있다. 당분간 한국에서 한국학 연구에 전념하겠다며 가족과 함께 지난 2월 대전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그를 지난달말 서울역 앞 한 커피숍에서 만나 한국정착 6개월의 소회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다시 지난 10일 남북정상회담 등에 대해 추가대화를 했다.

#1. 신세대 전문가가 보는 한·미관계

―지난 8일 남북정상회담 합의사실이 전격발표됐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남북간에는 단기적으로 여러가지 갈등이 있고, 관계진전 과정에 장애가 많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통합 단계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거액의 현금을 지원한 것 등에 대해 한·미 양국에서 비판적인 얘기가 많이 있고, 북한측도 당시 합의한 내용을 지키지 않아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미국의 인정이 제1 요건이라고 봅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했지만 국내의 정치현안 때문에 거기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미국방부쪽에서는 반대의견이 많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집권말기에 접어들면서 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워싱턴에는 한반도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국쪽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전략을 만들고 미국을 납득시키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합니다. 물론 일본과의 협력과 조율도 아주 필요합니다.”

―8·15 광복절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긴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만, 근대 제도적으로는 미국이 오래된 나라입니다. 한국은 1945년 8월15일 독립됐지만 미국은 1776년 7월4일 독립됐거든요. 독립된지 200년이 넘은 탓인지 미국에서는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의 독립기념일을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젊어서 제도적으로도 융통성이 많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은 제도가 경직되어 있는데 반해 한국은 2차대전 후 신생 독립국이라는 점에서 아주 젊은 나라이고, 미숙한 점이 없는게 아니지만 아주 활력이 있어 좋습니다.”

#2. 한국에서 본 한국의 교육열풍

―그간 연구자 자격으로 한국에 간헐적으로 머물다 이번에는 대학교수로 부임해 학사행정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소감은.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의 대학이 미국 대학에 비해 수준이 높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 한국 전체는 미국보다 낮지 않습니다. 다만 계층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은 상위층 10%는 한국의 상위 10%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뛰어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상위 10%가 글로벌시대 세계를 리드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하위층 40%는 한국의 하위층에 비해 아주 떨어진다고 봅니다. 한국의 그간 경제발전은 중간계층은 물론 하위층까지도 교육을 잘 시킨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한국 노동자들의 수준은 미국에 비해 아주 높은 편입니다.”

―미국에서 생각하던 한국과 한국에서 체험하는 한국이 많이 다른가요.

“한국땅을 처음 밟은지 10년 세월이 흘렀고, 아이가 2명 생겼고(한국여성 이승은씨와 96년 결혼해 아들 벤저민(7)과 딸 레이첼(4)을 두고 있음) 이번에는 학생이 아니라 교수로 왔기 때문에, 과거 처음 한국에 와서 혼자 살았던 때와는 아주 다른 조건이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고려대에서 지냈는데, 고려대를 놓고 얘기한다면 95년 당시 고려대는 전체적으로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강했지만 요즘에는 많이 개방됐으나 어떤면에서는 디즈니랜드같은 느낌이 들어 아쉽기도 합니다.”

―한국학생들의 조기유학붐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

“한국에 와서 살아보니 학부모들 대부분이 교육에 불만이 많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있는데 저는 한국교육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미국교육보다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큰애도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가야하는데 대전의 일반 초등학교에 넣을 생각이에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는 것은 학교교육 자체 문제라기보다 사회 계층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미국교육이 더 낫다고 보지만 한국사람들이 보는 미국은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되는 미국일뿐 현실의 미국은 아닙니다. 교육의 질이 천차만별입니다. 특히 나는 조기유학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 등의 추상적인 학문은 모국어로 배워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외국어로 배우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3. 한국근대지성사에 대한 관심

―요즘 한국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얘기하는 이들이 많은데 외국인으로서 실학 등 한국의 19세기 지성사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처음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원래 학부에서는 일본 근대문화사를 공부했는데 그것이 자연스레 한국의 실학사상으로 연결됐어요. 정약용, 박지원의 글은 읽을수록 깊은 맛을 느낍니다. ”

―정약용이나 박지원 등 조선후기의 대표적 실학사상가들의 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어요. 특히 정약용같은 지식인들은 한문으로 글을 썼지만 아이들에게 한국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많이 한 점이 새롭더군요. 19세기 조선에서 중국은 20세기 한국에서 미국의 위상과 맞먹는다고 봅니다. 당시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은 중국적 세계관을 가진채 중국역사 중심적 사고를 했는데 정약용은 그런 점을 비판한 것이지요. 요즘에도 한국지식인들 일부는 미국 중심적 사고를 하고 영어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잖아요.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양태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한·중·일 3국은 애증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동아시아 3국을 고루 공부한 이로서 근대 한·중·일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들어 한·중, 한·일 아주 빠르게 관계가 좋아지고 다층화하고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한·중·일에 대해 서로 갖고 있는 개념과 현실세계와는 큰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언론과 지식인들은 6자회담 정부대표가 나와서 토론하는 식으로 세상을 보지만 중국과 한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이미 아주 복잡한 공동체가 됐고, 현실은 관념보다 별문제 없이 풀리고 있습니다. 미래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단계에서 세나라의 상호관계는 별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엠마뉴엘 페스트라이시는 누구

미국 테네시주 네시빌에서 태어나 예일대에서 중국 청나라 문학을 전공(1987)한 뒤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에도시대 문학연구로 석사(1991), 하버드대에서 중국 민화소설이 한·일양국에 미친 영향으로 박사학위(1998)를 받았다. 1995년부터 2년간 고려대및 서울대에서 한·중문학비교연구를 했고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어바냐 삼페인의 일리노이대에서 동아시아 언어 및 문명학과 조교수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및 주미워싱턴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의 코러스 포럼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지난 2월 대전 우송대 국제대부교수로 부임한 뒤 이완구 충남 도지사의 비상근 국제교류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를 영역해 미국에 소개했고 최근엔 ‘아이러니한 직관 - 연암 박지원의 소설’번역을 완료, 펭귄출판사에서 출판작업이 진행중이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