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는 ‘FTA시대의 한국 車산업-파업고리 끊어야 초일류된다’ 기획시리즈의 마지막회로 28일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를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박학용 문화일보 경제산업부장의 사회로 서울 중구 충정로1가 문화일보 7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이들은 한국 자동차산업과 노사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애정 어린 충고와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남 원장과 이 전무는 완성차업체가 포함된 산별노조가 조합원의 권익향상과 무관한 정치투쟁 위주로 치닫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한국경제와 자동차산업이 살기 위해서는 이젠 노조를 조합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학용 부장(이하 박) = 올 들어 노사상생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지만 6월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저지 파업 등으로 노동계가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이하 남) = 국제적인 조류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노동운동을 지도하는 노조 상층부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산별노조라는 조직적 틀까지 합쳐지면서 노조가 근로자의 권익향상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정치투쟁 위주로 흐르고 있다.

◆이승철 전경련 전무(이하 이) =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는 무분규, 무파업, 노사상생 선언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중앙 단위로만 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불법 정치파업이나 갈등과 투쟁이 주가 되고 있다. 중앙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해외 투자설명회에 위원장이 쫓아가서 한국의 노사관계가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을 하고 있는 반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노사관계에도 양극화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박 = 민주노총 산하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결국 정치파업을 강행했는데.

◆남 =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완성차업체들이 가입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우려했던 산별노조의 경직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의사결정의 단위가 개별 기업의 현장 노동자가 아니라 산별노조 최상층부이고, 이들이 이념적 도그마(교리)에 빠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증폭되고 있다. 마치 1990년대 초반 학생운동조직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무너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산별체제를 인정하더라도 국제적인 추세 는 기업 단위로 가는 것이다. 산별노조가 존재하더라도 기업별 차이를 인정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고 안 좋은 것만 배우고 있다.

◆이 = 국제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는 정도까지도 괜찮다. 현실은 기업별 교섭에 산별 교섭까지 중첩돼 있는 상황이다. 산별노조가 도입될 때 기업들이 가장 우려한 점이 중앙단위의 정치파업이 증가하고, 이중교섭·이중파업이 늘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금속노조의 파업으로 기업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별 교섭에서 산별교섭으로 옮겨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별교섭으로 간다면 기업 단위 노조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게 맞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전임자 임금, 기업단위의 교섭권·파업권, 조합비 일괄 공제 등 기업 단위 노조의 기득권 중에서 없어진 게 거의 없다. 실제로는 산별교섭도 아니라는 얘기다.

◆박 = 한·미 FTA의 최대 수혜 업종으로 꼽히는 자동차업체들이 반(反) FTA 정치파업을 주도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도 있다.

◆남 = FTA는 내가 가진 밥그릇과 상대방의 밥그릇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밥그릇을 양보하는 대신에 큰 밥그릇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FTA를 지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속노조의 파업은 국민들이 가진 경제인식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 = 미국은 한국보다 국내총생산(GDP)이 15배나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미국 시장 확대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게 모든 전문가들의 견해다.

◆남 = 전략적, 정치적 목적도 있다고 본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이다.

◆박 = 파업으로 현대차의 경쟁력 저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 현대차는 노조원만 4만3000명으로 단일 노조로 최대 규모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이용하는 데다 다량의 재고를 보유하기 어려운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노조의 힘이 셀 수밖에 없다. 현대차 노조는 설립 이후 20년 동안 한 해만 빼고는 매해 파업을 했다. 누적 생산차질만 100만대, 파업손실액도 10조원이 넘는다.

◆이 = 현대차 노조원만 4만3000명으로 단일 노조로 최대 규모다. 컨베이어 벨트시스템을 이용하는 데다 다량의 재고를 보유하기 어려운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노조의 힘이 셀 수 밖에 없다. 현대차 노조는 설립 이후 20년 동안 한 해만 빼고는 매해 파업을 했다. 누적 생산차질만 100만대, 파업손실액도 10조원이 넘는다.

◆박 = 한국자동차산업이 세계 초일류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도요타 렉서스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는데.

◆이 =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설계 단계뿐만 아니라 조립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 현장에서 결점이 없고 품질이 균일한 차를 만드는 데는 노동자들의 의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조는 지금 품질이나 생산성 향상보다 근로 강도를 줄이고 임금과 복지를 올리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다.

◆박 = 노무현정부의 친노동정책이 불법 정치파업을 더욱 부추긴 게 아니냐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남 = 노무현정부의 노동정책은 우왕좌왕했다. 정권 초기에 사용자를 압박해 큰 혼란을 불러온 뒤에는 노동부 장관이 바뀌면서 법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변했다. 그러나 정치인 출신이 장관으로 온 뒤 다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법과 원칙은 말은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화와 타협, 법과 원칙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법과 원칙이 너무나 약한 상태다.

◆이 = 노무현정부 들어서 불법노사분규 건수 등은 줄고 있다. 그러나 불법파업이나 정치파업에 대해 엄격하게 법집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양으로는 줄고 있지만 정말로 노동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경제계에도 대화와 타협을 요청하고 있는데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은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다.

◆박 = 선진국의 노사관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남 = 현대차가 도요타처럼 돼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도요타의 노사관계도 1950년대에는 적대적이었다. 그러다가 도요타 노조가 전국자동차연맹이라는 상급단체로부터 탈퇴하면서 새로운 노사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또 노조 출신이 회사의 임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사측도 노조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노사관계가 시스템으로 정착돼 있다.

◆이 = 노사 관계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기업이 어려울 때 노조가 기업을 도와야 한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공급 포화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자동차항공우주농업기계노동조합(UAW)도 제너럴모터스(GM)의 3만8000명 구조조정을 허용하고 임금삭감과 복지혜택 축소를 받아들였다. 폴크스바겐도 임금상승 없이 근로시간을 5시간 늘리기로 합의했다.

◆박 = 차기 대통령이 가장 중점을 두고 실천해야할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남 = 노사관계의 준칙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은 대단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법과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또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경제정책의 최우선은 일자리 창출이다.

◆이 = 우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면 새로운 일자리도 늘어나고 근로자들에게도 더 알맞은 직장이 돌아온다. 일자리 창출도 중요한데, 억지로 일자리 만들려는 정책은 곤란하다. 예컨대 일자리 나누기보다는 일자리 만들기가 필요하다. 노동도 분배 위주가 아니라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가야한다.

◆박 = 한국 자동차산업이 초일류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남 = 현장의 작업 생산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가 전환배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해 쌍용자동차가 전환 배치를 받아들이면서 생산성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이 = 앞으로 중국 등에서 계속 쫓아오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으로 앞서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품질 경쟁력인데 이를 위해서는 노사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동차 생산의 비교우위가 떨어져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 상태다. 자동차산업의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 노사 합의를 통해 한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겠다.

◆박 =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노사상생의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 = 노조를 조합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 정치투쟁에서 벗어나 회사와 상생하려는 방향으로 노조가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리 = 조해동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