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작가 오에 겐자부로(왼쪽)와 그의 아들인 작곡가 히카리.

1963년에 태어난 오에 히카리는 태어나자마자 뇌의 일부가 두개골 밖으로 비집고 나온 뇌탈장 환자였다. 바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고, 수술을 받아도 자폐, 발달장애, 정신지체, 간질, 시작장애 등 거의 모든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이 평생을 감당해야 할 ‘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주변에선 수술을 만류했다.

그러나 히카리의 부모는 주저없이 수술을 결정했다. 히카리의 아버지는 당시에 이미 촉망 받는 젊은 작가였고,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그는 히카리의 수술을 결정했을 때,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를 함께 작성했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히카리는 현재 전세계에 적지 않은 팬을 두고 있는 작곡가다. 언론인으로 8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한 린슬리 캐머런이 지은 ‘빛의 음악’(이제이북스)은 지능지수 65에, 말도 못하고, 눈물관조차 없어 울 수도 없는,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태어난 아들을 작곡가로 키운 겐자부로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히카리로 지었다. ‘빛’이란 뜻이다. 생사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어떻게 빛이라는 이름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아이를 ‘빛’으로 받아들인, 이름을 짓는 그 시점에 히카리의 미래가 결정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름 속에는 겐자부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를 끝까지 풀고 가겠다는, 그것도 ‘짐’으로서가 아니라 그 생명이 지닌 가능성을 만개하도록 지켜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겐자부로는 후일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당황과 혼란 속에서(…) 직관적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히카리’라고 지었다. 나의 직관은 옳았다. 그 아이의 존재는 내 의식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둡고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밝혀주었으니 말이다”라고 회고한다.

오에 가족의 히카리와의 ‘소통’을 위한 노력은 끔찍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당시 패전의 후유증이 여전하던 일본사회는 장애인에 대해 편견 정도가 아니라 ‘혐오’라고 할만큼 백안시해, 오에 가족은 히카리를 ‘내놓고’ 키운다는 이유로 온갖 협박을 당하고 심지어 12살 때 유괴되는 일도 있었다.

오에 가족은 사물에 대한 반응이 거의 없는 히카리에게 일본 토착 새의 울음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필사적으로 들려주었다. 아이가 6살 되던 해, 휴양지의 숲에서 새 한 마리가 정적을 깨뜨렸고, 그때 히카리는 “이것은 흰눈썹뜸부기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새소리에 대한 기억도 정확했고 발음도 새소리와 같이 녹음돼 있던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의사들도 포기한 아이에게 6년간 계속된 가족들의 노력이 그제야 희미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히카리에게 매달리면서도 겐자부로는 소설을 계속 발표하는데, 그 내용은 주로 장애아와 그 가족에 대한 것이었다. 히카리를 직접 실명으로 지은 소설도 여럿 있다. 겐자부로는 자신의 창작행위에 대해 소통을 못하는 아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외부와의 소통을 시작한 히카리는 더 나아가 클래식 음악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클래식 음악만 들려주면 하루종일 몰두했다. 부모는 그에게 음악 선생님을 붙여주고, 히카리는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기 시작해 작곡을 하기까지 이른다. 이제 세상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히카리는 20세를 넘어서면서 작곡가로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이제 아들이 아버지라는 보호자로부터 독립한 것이다. 히카리의 독립은 바로 아버지의 독립이기도 했고, 아버지의 성공이기도 했다. 장애아를 키우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개인적 체험’으로 겐자부로는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겐자부로는 “나는 줄곧 히카리를 치료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아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치료되고 있음을 느꼈다”라고 말한다. 아들의 치유를 통해 자신이 치유되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겐자부로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겐자부로는 아들의 성공 이후 소설을 그만 쓰겠다고 절필을 선언한 적도 있다. ‘인생의 숙제’를 다 마쳤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 책은 2003년에 국내에서 번역돼 출판됐으나 초반 2000부조차 채 소화되지 못해 재고본은 공공도서관에 기증됐었다. 개정판으로 책을 다시 낸 이제이북스 전응주 대표는 “장애아를 키운 가족의 이야기라는 것을 넘어, 존재가 삶을 어떻게 딛고 가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책의 무게 때문에,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다시 출간했다”고 말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