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극의 시대다. 진지한 몸과 언어의 예술, 연극이 ‘뜨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사장 김용배)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예술의전당의 토월명작연극 여덟번째 시리즈 ‘시련’이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작품은 러닝 타임 3시간20여분에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세일럼의 마녀사냥에 빗대어 매카시즘 광풍을 비판했던 현대의 고전. 볼거리도 없이 언어 중심으로 풀어내는 무거운 극이라 1층 가운데 자리만 차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2층까지 꽉꽉 채우는 매진사태를 빚고 있는 것이다. 29일 종연을 앞두고 28일 이 공연 처음으로 하루 2회를 공연하지만 이미 표는 동이 나버려 무대의 일부가 보이지 않아 평소에는 팔지 않는 사석까지 팔리고 있다.


전해웅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은 “10년 가까이 진행된 토월명작연극시리즈 사상 최대로 관객이 많이 들었다”며 “원작이 힘이 있고, 주인공 김명수씨를 비롯해 권성덕 김진태 정동환 이승비씨 등 좋은 배우들에 무대나 의상, 연출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평가했다. 전 팀장은 특히 “할리우드 영화나 뮤지컬과 같이 가벼운 장르적 예술로 훈련된 관객들이 좀 더 진지한 감동을 찾아 정극쪽으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연출한 윤호진씨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 연출자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나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 가보면 장기 공연하는 뮤지컬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오래 공연하는 연극들이 있다”며 “선진국으로 갈수록 직접적인 경험을 요구하는 공연시장이 확대되고, 특히 진지한 정극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불붙은 ‘연극 바람’에 기름을 붓는 것이 최근 잇따르고 있는 ‘스타의 연극무대 귀환’이다.

한국 여배우의 대명사 김혜자씨가 올초 전통의 실험극장의 ‘다우트’로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 2월23일부터 한달여동안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앙코르 무대에서 팬들과 다시 만났다. 이 작품은 현재 예수정씨가 김씨의 역을 맡아 계속 공연하고 있다.

영화배우 조재현씨가 지난 1월부터 3월25일까지 출연한 극단 골목길의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도 관객들이 몰려들어 공연내내 보조석을 놓고도 모자라 2차례 앙코르 공연을 해야 했다.

김혜자씨를 잇는 한국 어머니상의 대표 고두심씨도 지난 12일부터 ‘친정엄마’라는 연극으로 대학로 나들이에 나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다음달 6일 막을 내리기 이미 오래전에 매진된 이 작품은 팬들의 성화에 벌써부터 앙코르 공연이 확정됐다.

유지태씨가 제작, 주연한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도 지난 10일 서울 제일화재세실극장에서 공연, 매진 사례를 빚고 있다. 평일 여성관객이 90%를 넘을 정도로 도심의 화제로 떠올랐다. 유씨의 스케줄상 막을 내리는 다음달 27일 이후 앙코르공연이 불가능해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고 마케팅 관계자는 전했다.

유씨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메릴 스트리프가 무료 연극 공연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 부럽더라”며 “유명배우들이 부담없이 연극무대에 서고, 관객들은 그걸 또 보러 와주고…. 매년 한편씩 연극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TV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 상단의 책사로 ‘뜬’ 배수빈씨가 출연, 지난 5일부터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동숭아트센터씨어터와 극단 신기루만화경 공동제작 연극 ‘다리퐁 모단걸’도 유료관객이 70%를 넘어서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초대권을 포함하면 이같은 예매율은 매진상황. 그러나 동숭아트센터는 초대권을 돌리지 않아 객석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영화쪽에서 더 인기가 높은 극단 대표 오달수씨가 목소리 연기로 나서는 등 마케팅에 적극 나서 유료객석 점유율은 점차 올라가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스타들의 연극 귀환에 대미를 찍는 작품이 최민식씨가 주연한 ‘필로우맨’. 5월1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예정인 이 작품은 이미 5000여장이 예매된 상태. 아무리 스타가 나오지만 예매문화가 활성화하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 더욱이 연극으로는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현재 한국처럼 고급예술 애호가가 폭발적으로 증가, 이를 즐길 준비가 돼있는 나라가 없다”며 “영화, 뮤지컬 등 가벼운 예술의 시대를 넘어 진지한 예술을 찾는데 그 대상이 없을 뿐”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특히 “블루 오션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며 “변화를 남보다 조금 빨리 읽으면 그게 바로 블루 오션”이라고 머지않아 ‘진지한 연극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