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실종된 양지승(9·서귀북초 3)양이 실종 40일 만에 집 앞에서 70m 떨어진 곳에 발견되면서 무려 3만명을 동원한 경찰 수사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달 인천에서 유괴된 뒤 살해된 박모(8·초교 2년)군 사건때도 결국 박군이 살해된 채 발견돼 경찰의 초동 대응에 아쉬움을 남긴데 이어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경찰을 원망하는 시민들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제주도 유괴사건 수사의 가장 큰 허점은 ▲등잔밑도 살피지 못한 엉터리 수색 ▲범행 현장 주변의 부실한 전과자 관리 ▲사건 발생 초기대응 미비등으로 요약된다.

◆ 3만명 동원해 엉뚱한 곳 수색 = 지승양은 지난달 16일 오후 5시쯤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학원 차량을 타고 돌아와 집앞에서 내린 뒤 실종됐다. 경찰은 실종신고 하루 뒤인 17일 지승양의 사진 등을 언론에 공개하며 공개수사에 들어갔다. 이후 헬기와 수색견 및 경찰관과 전·의경, 공무원, 119소방대원, 군인 등 연인원 3만여명을 투입해 서귀포시 일대를 수색했으나 지승양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건이 길어지자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양지승 어린이를 조속히 찾으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렸다. 이택순 경찰청장도 22일 서귀포경찰서 중앙치안센터에 설치된 수사본부에 특별수사팀 운영을 지시했다.

지난 9일에는 실종아동 발생시 전광판과 휴대전화 등을 활용해 상황을 전파하는 앰버 경고(AMBER Alert)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지승양을 1호로 내보냈다. 하지만 지승양의 시신은 24일 오후 5시20분쯤 지승양이 살던 서귀포시 서흥동 S빌라에서 불과 70여m 떨어진 감귤 과수원 폐가전제품 더미 속에서 검은색 비닐과 마대자루에 담겨진 채 발견됐다.

◆ 지척에 있었던 유괴 전과자 = 지승양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경찰이 지승양 실종 이후 세차례나 집중 수색을 벌였던 지역이었다. 지승양은 실종 당일 오후 7시쯤 살해된 뒤 40일 동안이나 폐가전제품 더미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경찰은 지승양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연인원 3만명을 동원했다지만 수색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특히 지승양을 성추행한 뒤 살해한 송모(49)씨가 이미 97년 두살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으로 수감되는 등 전과 21범이었음에도 경찰은 최근에야 송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수색견과 수렵협회의 개까지 수십마리를 동원해 여러차례 수색을 했으나 쓰레기더미 옆에 있는 재래식화장실에서 냄새가 많이 난데다 지승양의 시신이 비닐로 이중으로 싸여 개들이 냄새를 맡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초동수사 문제점은 지난달 발생한 박군 유괴사건 때도 이미 지적됐다. 박군 유괴협박 전화가 처음으로 온 것은 11일 오후 2시45분. 하지만 경찰이 협박전화 감청과 위치 추적에 나선 것은 6시간이나 지난 오후 8시29분 5번째 전화부터였다. 게다가 유괴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초기 인천시내 6개 경찰서 형사인력만 투입, 초동단계에 주요 도로에 대한 일제 검문검색 등을 하지 못했다. 경찰이 허점투성이 수사를 하는 동안 범인 이모(28)씨는 이날 오후 11시30분쯤 살아있는 박군을 한 유수지에 던져 살해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은 지승양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를 꼬집었다.

◆ 경찰 비난 봇물, 책임자 문책론 제기 = 시민들과 누리꾼 사이에서는 경찰의 부실 수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관련자 징계까지 요구하고 있다.

경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감안, 수사 책임자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대통령과 경찰청장까지 나서 빠른 사건 해결을 독려했는데도 40일 동안 시간을 허비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엉터리수사를 한 데 대해 경찰 수뇌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이디 ‘kwak2847’는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데도 집부근에 있는 지승양을 찾아내지 못한 경찰수사가 한심스럽다”며 “아마도 범인을 체포하는 것으로 수당을 올려준다면 검거율이 올라갈 것”이라며 경찰수사를 비난했다.

아이디 ‘ttkchung42’는 “납치사건을 수사하면서 사고 현장 부근에서 시체발굴 수사나 전과자 수사가 이뤄지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라며 “수사본부 부근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엉뚱한 곳만 뒤지고 다닌 경찰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다”며 수박겉핥기식 수사를 지적했다.

김석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