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면서 현대인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감에 휩싸이고, 사이버 공간에 중독돼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특히 속도를 중시하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현대인의 조급증도 심화되고 있다.

◆디지털 중독증 = 대학생 박모(여·23)씨는 틈만 나면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새로 나온 연예 뉴스를 읽는다. 박씨는 “컴퓨터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포털에 접속해 뉴스를 읽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가끔씩 인터넷을 할 수 없는 날이면 앞뒤가 꽉 막힌 느낌이 들어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털어놨다.

인터넷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나 네이버의 ‘블로그’에 빠져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인터넷 접속자간의 대화에 몰두하는 ‘메신저 중독’도 이미 오래전부터 우려가 제기된 증상중 하나다. 포털사이트에는 블로그의 방문자수 등을 높이기 위한 ‘낚시글’ 역시 하루에 수백건씩 오르내리면서 이같은 증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조사한 ‘2006년 인터넷 중독 실태’에 따르면 청소년의 14.0%, 성인의 8.5%가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휴대전화에 중독된 청소년도 10.1%, 성인은 4.1%에 달했다.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인프라가 잘 갖춰져 디지털 중독자가 많은 편”이라며 “인터넷 중독자만 해도 미국에 비해 2배나 높다”고 말했다.

◆디지털 조급증 = DVD를 즐겨보는 대학생 김모(25)씨는 방학이면 하루에 3편씩 영화를 본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지루하다 싶으면 ‘빨리감기’ 버튼을 누르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근 나오는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의 경우 30분만에 다 본다”며 “멋진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만 봐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소영(31)씨는 간혹 휴대전화 메시지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친구나 친지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에 즉각적인 답변이 없으면 왠지 불안해진다고 한다. 이씨는 “보낸 메시지에 반응이 없으면 내 메시지를 받지 못한 것처럼 생각돼 결국은 전화로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퀵백(Quick Back)’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즉각적인 반응을 보고 싶어하는 디지털세대들의 모습에서 따온 용어다.

조숙행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는 “과거에는 리포트를 내더라도 미리 꼼꼼하게 자료를 챙기는 등 생각할 시간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정보를 워낙 쉽게 얻을 수 있다보니 오히려 더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신의진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도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시간이 늘고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디지털 세상을 일상과 혼동해 일상생활에서도 디지털 세상에서의 빠름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영삼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장은 “컴퓨터 사용시간 등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든지,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우 중독을 의심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디지털 중독에 해당된다면 증세를 스스로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음성원·민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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