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결과를 놓고 정부가 상당히 고무된 듯하다. 특히 한·미 FTA 합의안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 긍정적인 응답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더욱 그런 것 같다.

협상 타결 이후 정부가 대국민 정책홍보 사이트인 ‘국정 브리핑’에 올린 협상결과에 대한 평가를 보면 정부 내부의 ‘흥분감’마저 느껴진다.

실제로 국정브리핑은 3일 “이번 협상으로 미국 측은 동아시아 경제진출의 교두보 확보라는 ‘명분’을 얻었지만, 우리는 ‘한국경제 샌드위치 상황’을 벗어날 제도적 틀을 확보하는 ‘명분’ 과 함께 대미 수출 길을 크게 넓히는 ‘실익’을 동시에 얻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한걸음 더 나가 “이번 협상은 한국의 완벽한 판정승”이라며 “우리가 기대 이상으로 얻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가 자체 평가해 국정브리핑에 게재한 ‘한·미 FTA 손익계산’ 표에서는 한국이 얻은 것으로는 14개 항목, 미국이 얻은 것으로는 이보다 5개가 적은 9개 항목을 제시해 비교했다. 여기에 한국 측으로 크게 기운 수평저울 삽화(그림)까지 곁들여 이번 협상이 한국의 압승이었음을 과시했다.

거대 미국에 맞서 당당한 성과를 거둔 우리 협상팀에 많은 전문가들은 진심 어린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들 말한다. 정부가 앞장선 지나친 ‘오버액션’이 자칫 협상안의 의회 비준을 앞두고 우리 스스로를 자승자박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물론 한·미 FTA 협상결과에 대한 정부의 이 같은 자화자찬식 홍보가 “한·미 FTA는 퍼주기식 졸속 협상”이란 일부 FTA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의식한 ‘대내 설득용’이란 점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 여론이 있듯이 상대방인 미국에도 여론이 있다. 양자간 통상협상에서 한쪽이 ‘완승’을 했다는 것은 다른 쪽은 ‘완패’를 했다는 의미다. 그러지 않아도 이번 협상결과를 놓고 미국 의회 안팎에서 적지 않은 반발 여론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서둘러 샴페인을 터뜨리며 미국 내 여론을 자극할 경우 자칫 미국측에 추가적인 장외협상 요구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전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민주당 지도급 의원들이 한·미 FTA 합의안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비준 거부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가운데 쇠고기·자동차분야 협상결과에 불만을 품은 공화당 의원들까지 가세하면 한·미 FTA의 미 의회 비준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지난 2005년 중·미 자유무역협정(CAFTA)의 비준안은 미 의회에서 단 2표차(217대 215)로 간신히 통과했었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내 여론도 의식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이번 협상에서 우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부각할 경우 향후 한국 협상팀이 전략적으로 수세에 몰릴 수 있다”며 “한·미 양측의 국익에 모두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 협상’이란 점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 합의안 마련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국제 통상협상의 거인으로서, 한국에 ‘완패’하고 물러날 미국이 아니지 않은가.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김병직기자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