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손’의 나라다. 국토가 넓은 것도 아니고, 무궁무진한 천연자원을 가지지도 않았다. 국제적인 교역 중심국으로서 탁월한 지리적 여건을 갖춘 것도 아니며, 전 세계에서 부(富)를 축적할 수 있는 많은 인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는 어느 민족도 가지지 못한 부지런함과 조그만 손을 이용,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정교한 기술을 만들어 왔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발전 모델로 칭송받기도 하고 세계적인 기업도 가지게 됐다.

그런 우리가 지난 몇 년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우리 이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지 양극화 현상에 따른 극심한 계층·분배 갈등에 휩싸여 왔다. 잘살기 위한 대가로 소중한 휴머니즘을 희생한 것일까. 과학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학문의 가장 기본인 원칙과 절차가 경시되곤 했다. 지난해 내내 우리를 우울하게 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은 근본적인 교육과 과학절차가 무시돼 생긴 비극들이다.

21세기는 정보시대를 거친 생명과학의 시대다. 생명이 가진 무궁무진한 정보로 한 나라의 발전이 도모되는 그런 시대다. 학문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모든 지식이 융합돼 새로운 분야가 탄생되는 시대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학문이 이뤄지는 게 아닌 과학 개발에 대한 이익 실현과 책임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대 이병천 교수팀의 늑대 복제 성공 발표가 있기 며칠 전, 정부가 ‘생명공학 육성 시행계획’ 등을 심의·확정하면서 과학계에 국가 발전에 기여해 달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지난해 과학계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윤리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체세포 핵이식에 따른 인간배아 남용 우려도 기초를 다지는 데 소중한 지적이다.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손’을 지키는 게 아닐까.

막대한 규모의 연구비를 투자, 40∼50명의 연구자가 모여 생명과학 전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일본 유럽을 우리가 정면으로 상대하기는 벅차다. 그들을 이기기보다 인류 발전을 위한 파트너로 대우하며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여 육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손’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해내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운 과학영재를 발굴하여 교육하는 것만큼이나, 음지에서 학문 발전을 위해 조용히 매진하고 있는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고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수 있는 학자들을 보호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제 과학자들도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아야 한다.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세밀한 공동연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학문 업적에 관한 공평한 ‘논공행상’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과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또 다른 요소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다. 개발된 기술이 정말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정확히 판단되어야만 한다. 외부 평가 시스템의 활용, 평가자의 보호 및 비밀 유지, 그리고 자질 향상 등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탱해 온 ‘손’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더욱 국가 발전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화합과 공유, 그리고 선택을 통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인 ‘손’을 지키는 것, 이것이 21세기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임정묵 / 서울대 교수·줄기세포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