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구 1000원권 지폐에 도안으로 쓰인 도산서원의 모습. 앞쪽의 건물이 퇴계가 생전에 후학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이다. 부속건물들은 퇴계 사후 서원으로 개편하면서 지어졌다.

지난 22일 1만원권과 1000원권 새 지폐가 발행되는 날, 한국은행 앞에는 신권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지요. 우연히 손에 들어온 1000원짜리 신권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뒷면의 수려한 그림에 눈이 갔습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라는데, 그림 속의 그곳이 어딘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림 한 장의 수수께끼를 찾아가는 긴 여행’의 출발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지난해 1월 처음 1000원권 도안이 확정됐을 때, 한국은행은 그곳이 ‘도산서원의 옛 모습인 도산서당’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은행은 “새 지폐 도안을 논의하면서 1000원권의 도산서원은 퇴계 사후에 정비된 모습이라, 가급적 퇴계 생전 증축되기 전 도산서당 모습을 새 지폐에 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다가 겸재 정선의 그림 ‘계상정거도’를 발견했고, 그 그림을 지폐 뒷면 도안으로 사용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1년 뒤 1000원권 지폐를 발행하면서 그림 속의 장소가 ‘계상서당’이라고 돌연 말을 바꿨습니다. 장소가 바뀐 데 대해 별다른 설명도 없었습니다. 도산서당과 계상서당은 엄연히 다른 곳입니다. 퇴계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지금의 퇴계 종가 근처에 계상서당을 세웠습니다. 퇴계는 8년여를 계상서당에서 머물다가 이후 산 너머에 도산서당을 짓고 그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1000원짜리 지폐 뒷면에 그려진 장소는 어디일까요. 한국은행이 바꾼 말대로 계상서당이 맞을까요?

이스케이프 팀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새 1000원권 지폐를 한장 들고 안동으로 떠났습니다. 퇴계 종가를 찾은 날은 마침 퇴계의 기일이어서 모처럼 한자리에 둥글게 모여앉은 문중의 어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퇴계학을 연구하는 학자와 건축가들로부터 증언도 들었습니다. 도산서당을 돌아보고, 수년전에 문중에서 ‘조용히’ 복원했다는 계상서당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떠난 길에서 어렵사리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았답니다. 새 1000원짜리 지폐의 비밀. 그 비밀 속으로 이스케이프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안동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