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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태어난 신조어들은 한국사회의 변화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 외환위기 이후 팍팍해진 국민의 삶을 반영하는 말들이다. 특히 불안한 고용과 취업난을 반영하는 신조어가 많다. 인터넷 사용이 확산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사이버 세상에서 사용하던 용어들도 속속 보통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외환위기가 남긴 그늘 = 외환위기가 닥치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그러면서 생긴 신조어가 ‘사오정(45세면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였다. 외환위기가 끝났지만 이 단어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삼팔육(38세까지 직장다니면 선방)’으로 확장됐다.

외환위기의 그늘은 중년층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을 자조하는 신조어가 이를 대변한다.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취직한 취업생)’, ‘삼일절(31세면 취업길 막힌다)’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되는 것을 생각해야한다)’으로 확산되고 있다.

‘캥거루족(대학졸업 후에도 취직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젊은 세대)’,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이라는 말도 자리를 잡았다. 불안한 직장생활 덕에 7·9급 공무원 시험이 사시·행시·외시만큼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공시’로 불리더니 ‘공시족’, ‘공시폐인’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정부와 재계, 노동계 모두에 뜨거운 감자인 ‘비정규직’이나 이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노숙자’도 외환위기가 한국사회에 남겨놓은, 슬픈 자화상이다.

◆인터넷이 쏟아낸 신조어 = 인터넷 강국으로 변모한 우리사회를 보여주는 ‘홈피’, ‘싸이질(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일)’, ‘싸이홀릭’ 등도 이제는 익숙해진 단어가 됐다. ‘쌩얼(화장 안한 얼굴)’, ‘안습(안구에 습기차다·눈물나다)’, ‘완소(완전 소중)’, ‘훈남(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남자)’, ‘썩소(썩은 미소)’, ‘급(급하게)’과 같은 온라인 신조어도 오프라인에 안착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떠오른‘한류’와 ‘욘사마’도 자리를 잡았다.

위기를 극복한 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인구가 늘면서 ‘웰빙’이나 ‘몸짱’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번졌다. ‘노무족(No More Uncle·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다)’, ‘노마족(No More Aunt·더 이상 아줌마가 아니다)’은 젊음을 추구하는 세태를 반영한다. 반면 ‘얼짱(잘 생긴 사람)’, ‘얼꽝(못 생긴 사람)’, ‘된장녀(허영에 찬 여자)’ 등 외모지상주의나 허영심을 드러내는 말도 논란과 함께 퍼져나갔다.

김석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