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보드랍고 따스한 뼈와 살을 가진 아기를 안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를 서성이는 꿈이었다. 남자 아기였고, 내 아기였다. 누가 말해 준 것도 아닌데, 꿈속의 나는 그냥 알고 있었다. 오로지 내게 의지한, 내가 보살펴야 하는 이 연약한 존재. 그 가슴 떨리는 행복은 눈을 떴는데도 가시지 않고 두 팔과 양 가슴에 오롯이 남아 있었다.

하나를 잃었다. 그리고 다시 하나를 얻었다. 내 표현이 아니다. 소식을 들은 사탕언니의 표현이다.

네 시간의 수술과 한달 여의 고통.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시작이다. 이제는 불행해보이지 않기 위해 기를 쓸 필요가 없다. 행복하다.

눈이 많이 내리면 내게는 행복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 아라를 만났고, 남편을 만났고, 예림이를 만났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순간들. 그리고 오늘, 내 생(生)에 또 한번의 감사를 한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왔다. 산란한 이 모습을 37년간이나 믿음으로 지켜봐 준 아버지, 내게 늘 영감을 주고 깨어있을 것을 요구하는 엄마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또 아버지와, 그리고 또 엄마. 엄마의 허리병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내 동생 수연이, 내 동생 영민이, 훈일이, 미정이, 은영이, 덕영씨, 서연이 그리고 지후… 목이 메어 다 부를 수도 없는 이름들.

섬, 해병, 레리, 문, 잎. 겨자나 와사비나의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긴 날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이순원 선생님의 격려와 질책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부족한 작품을 어여삐 보아주신 박범신, 오정희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행복은 잠시다. 이제 정신이 들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물리고 싶다. 맨손에 맨발인데… 다시, 갈 길이 너무 멀다.

■약력
▲1969년 서울 출생
▲일본 사이타마 대학 교양학부 중퇴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