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재원도 ‘민어 파시’의 추억

이미지 크게보기 오는 15일까지 젓새우가 금어기라, 새우떼를 쫓던 배들이 백사장에 올라앉아 있다.

# 괴물같은 민어…“민어는 큰 놈이 젤로 맛있제”

이건 물고기가 아니라, 숫제 괴물같다. 무게가 20㎏을 훌쩍 넘는다는 민어. 길이가 1m는 넘어 보이는 민어는 둘이 들어올리기도 벅찼다.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외지에서 온 ‘육지 것’의 눈에는 이런 크기의 물고기가 신기할 뿐이다. 우리 연안에 이런 괴물같은 물고기가 살다니….

송도어판장에서 중매일을 하고 있는 일호수산 진남례(여·60)씨는 “이 정도 크기면 어른 서른명쯤은 너끈히 먹고 남는다”며 “요즘은 1주일에 두세마리씩은 이만한 것이 꼭 나온다”고 했다. 민어 입 안으로 어른 주먹이 들락거릴 정도지만, 진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기서 7년째 장사하면서 최고 27㎏짜리 민어도 봤다”고 했다.

송도어판장은 전남 신안군 지도 옆에 말그대로 ‘손바닥만한’ 섬에 있다. 1974년 무안군 해제에서 지도와 연결되는 연륙교가 개설되면서 육지가 돼버린 곳이다. 이곳에서는 연안에서 잡은 민어를 비롯해 꽃게, 병치(병어), 서대 등이 거래된다. 이 활어들은 임자도나 낙월도 근해 어장에서 잡힌 것들. 여기서 잡은 생선들은 타지 것보다 20% 정도 가격이 더 비싸다. 같은 고기라도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대 바다가 모두 뻘밭인데, 연안 갯벌에서 나는 생선치고 맛없는 것이 없다는 게 중매인들의 설명. 중매인들은 고깃배가 들어설 때마다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경매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어판장의 규모나 거래되는 수산물의 양으로 치자면, 이곳 공판장은 목포며 군산 등 다른 큰 어항에 비해 보잘 것없다. 하지만 연안어장에서 10t 안쪽의 작은 배로 당일 그물질해 잡은 생선이라 신선도에서는 비교할 수 없다. 이곳 어민들은 그날 잡아 그날 내간다고 해서 이곳에서 나는 생선들을 ‘당일바리’라고 했다. 본격 민어철을 맞으면서 이곳 어판장에는 새벽을 가르며 달려온 배에서 팔뚝만한 산 민어들이 ‘당일바리’로 내려지고 있었다.

# 알 밴 암컷보다 수컷을 더 쳐주는 민어

전남 서남해안에서는 봄에는 병어, 여름에는 민어가 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농어와 꽃게, 겨울에는 김장용 젓갈새우인 동백하가 난다. 민어철을 맞은 요즘에는 하루 700~1000㎏의 민어가 송도어판장의 경매에 나와 서울, 광주, 목포로 팔려나간다. 어판장을 찾은 지난 4일은 물때가 좋지 않았지만, 이날도 500㎏이 넘는 민어가 경매에 부쳐졌다. 민어를 경락받은 공판장 주변의 중매인들은 피서객들에게 1㎏당 2만5000~3만원에 팔았다.

어판장 부근 지도횟집의 박선미 사장은 “민어는 지느러미와 쓸개 외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며 “부레는 잘게 썰고, 껍질도 살짝 데쳐서 횟감으로 올려놓는다”고 했다. 박 사장은 또 “도회지에서는 민어라며 홍민어를 내놓는 곳도 있는데, 질긴 맛의 홍민어는 민어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고 했다.

민어는 알이 밴 암컷보다 수컷을 더 쳐준다. 암컷의 경우 알이 워낙 커서 살이 얼마 없는데다 알을 만드느라 살 속의 기름기도 빠져 맛이 덜하다는 것. 실제로 암컷의 배를 가르면 팔뚝만한 알이 쏟아져 나왔다. 반면 수컷은 살도 쫀득거리고 기름기도 적당하게 돌아서 감칠맛이 느껴진다고 했다. 회를 쳐낸 뒤 민어 뼈와 부산물로 끓여내는 민어탕은 굳이 여러 양념을 넣을 필요없이, 마늘만 넣고 소금간을 해도 입맛을 확 끌어당긴다.

이즈음 지도 인근의 횟집을 찾으면 3인 기준 민어회 가격은 8만원 정도. 매일매일 어획량이나 경매가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대략 1㎏당 6만원 안팎이다. 물이 빠지는 조금 때보다는 고기가 잘 잡히는 사리때 가야 싼 값에 맛볼 수 있다.

# 민어 파시, 과거의 영화를 따라가는 길

“한창 때는 정박한 배만 딛고서 건너편에 보이는 임자도까정 건너 갔다네. 고기를 따라 뱃사람들이 모여들어 온 섬이 흥청망청이었지.”

하루 두번 열리는 뱃길을 따라 지도의 점암선착장에서 철부선을 타고 1시간. 임자도 서쪽의 작은 섬인 재원도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민어 파시가 열렸던 곳이다. 정칠복(67) 이장은 “그때만 해도 민어철이면 온바다에서 민어 우는 소리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했다.

일제시대 때까지만 해도 임자도 인근의 파시는 재원도가 아닌, 타리도에서 열렸다. 파시 중에서도 한여름에 열리는 민어파시가 가장 컸다. 일본에서 무역선이 줄을 이어 들어와서 민어를 실어갈 정도였다. 중국어선들도 무시로 드나들었다. 무인도였던 작은 섬 타리도에는 파시가 들어서면서 수백곳이 넘는 술집과 선구 판매점이 생겼고, 뱃사람의 술 상대를 해주는 색시들만도 수백명이 넘었다. 그러던 것이 동력선이 등장하고, 고기잡이 기술이 발달하면서 타리도의 파시는 급격하게 쇠락하고 말았다.

해방 이후 파시는 임자도 인근의 재원도로 옮겨갔다. 임자도 쪽으로 열린 재원도의 포구는 파도와 바람을 막는 천혜의 장소였다. 6·25를 거치면서 재원도의 파시는 급속도로 커졌다. 하루 400~500척의 배가 재원도에 닻을 내렸다. 여름철이면 알을 낳으려는 민어떼가 몰려들고, 민어 따라서 돈이 몰리고, 돈냄새를 맡은 여자들은 파시로 몰려들었다. 다방과 술집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해당화가 피는 계절, 여자들이 옷을 빨아 걸어놓으면 꽃인지, 옷인지 몰랐다던가. 선창에는 술집 작부들의 젓가락 장단과 애절한 노래가 울려퍼졌다.

재원도 중앙상회의 김점자(여·58)씨는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히던지, 그때는 꽃게도 작은 것은 재에 묻어놓고 비료로 썼다”고 했다. 가게도 덩달아 손님들로 들끓었다. 김씨는 “파시가 남아 있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기가 신안군에서 담배를 가장 많이 파는 가게였다”며 “사흘이 멀다하고 7시간 걸리는 뱃길을 따라 목포로 나가 담배를 떼왔다”고 했다.

# 파시가 떠나간 재원도. 그 쓸쓸한 풍경들

한여름 재원도는 새우잡이 배를 타는 선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새우젓을 담그는 잔새우 잡이가 8월15일까지 금지돼 배들이 모두 포구로 들어온 탓이다. 섬에는 온통 배들이 부려놓은 노란색 새우그물로 가득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의 선원들은 마을 안쪽까지 길을 점령하고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물을 깁기도 하고, 배를 도색하기도 하고, 더러는 낮잠을 자면서 한여름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재원도의 가구수는 45호 남짓. 버스도, 승용차도 없다. 번듯한 길이라야 포구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300여m에 불과하니 차가 있더라도 ‘다닐 길’이 없다. 대신 배는 50척이 넘는다. 작은 것은 5t 남짓, 큰 배라야 9t 안쪽이 대부분이다. 배가 많으니 당연히 외지에서 온 선원들도 많다.

한척당 5, 6명의 선원을 두고 있으니 200명은 족히 넘는다. 대부분 목포의 직업소개소를 거쳐서 배를 타게 된 사람들이다. 함께 살 가족도 없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육지에서 발붙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 사연없는 사람은 없을거요. 오죽 일이 힘들면 ‘육지 남자들이 팔려가서 새우잡이배를 탄다’고 했겠소.”

열아홉살 때부터 배를 탔다는 창성호 선장 정윤식(43)씨는 “뱃사람들이 거칠게 보이지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마음 여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들 선원이 손끝이 부르트도록 뱃일을 해서 버는 돈은 한달에 100만원 안쪽. 그것도 담뱃값과 술값으로 날려버리기 일쑤다.

틈만 나면 술잔을 드는 선원들 탓에 선장들은 섬 안 두곳의 가게 주인에게 ‘절대로 외상술을 주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지만, 선원들은 고단한 노동이 끝나면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그래서일까. 외지인을 잔뜩 경계하며 구부리고 앉아 그물을 깁는 선원들의 검게 그을린 등이 한없이 쓸쓸해보였다.

# 사라진 파시에 대한 추억담, 그리고 상처들

재원도에서 이제는 사라진 파시의 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막걸리집 작부의 젓가락질 장단에 흥청거렸을 부두앞 슬레이트 건물에는 옛 상호를 알려주는 몇개의 글씨만이 예전에 그곳이 유흥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던 마을 주민들은 불꺼진 아궁이를 뒤적거리듯 파시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파시가 한창이던 당시의 재원도는 호경기로 흥청거렸지만, 그것은 모두 외지인들의 차지였다. 손바닥만한 밭을 갈아먹던 주민들은 뗏목을 타고 정박해놓은 배에 다가가 뱃사람들에게 술을 팔았다.

소주 댓병이나 막걸리 한되에 기본안주를 차려놓은 ‘한상’에 150원을 받았는데, 한상을 팔면 술집에서 15원 정도를 구전으로 받았다. 동네 처녀나 아이들은 물지게를 져다가 배에 팔았다. 이제 재원도에서 민어를 잡는 어선은 거의 사라졌다. 민어보다는 새우잡이가 더 쏠쏠하게 돈이 되는 까닭이다.

새우잡이 배들은 한여름 금어기를 틈타 짬을 내서 민어잡이에 나선다. 민어떼가 육지로 몰리는 사리 때를 기다렸다가 배에 삼중망을 싣고 민어를 쫓는다. 새우잡이보다 이문은 적지만 놀기도 뭣하고, 팔뚝보다 굵은 민어를 끌어내는 맛 때문에 뱃사람들은 민어잡이에 나선다.

철부선을 타고 육지로 돌아오는 길. 몇몇 승객들이 뱃전에 서서 안개 속에 지워져가는 재원도를 바라보고 있다.

한때 파시로 번성했던 이곳을 거쳐간 뱃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밤이면 화사한 화장으로 피어나던 색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30년 가까이 작은 섬마을을 돌며 행상일을 하고 있다는 김우돌(여·56)씨는 “가난 때문에 파시때 섬으로 팔려와 뱃사람들에게 웃음을 팔던 여자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고, 아이들에게는 돌멩이 세레까지 받으며 서러운 삶을 살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