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25일 끝내 결렬되자 국제사회에 후폭풍이 거세고 일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협상 결렬이 서로 ‘네 탓’이라며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고, 인도는 차라리 EU·일본과 자유무역 협상을 벌이겠다고 선언하는 등 지역 경제블록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AFP통신은 “미국의 복잡한 정치 일정과 각국 이해관계가 엇갈려 2009년까지는 협상재개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EU의 ‘책임 공방’ 가열 =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이날 프랑스 라디오방송 ‘프랑스-앵테르’에 출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만큼 WTO 가입국들은 새로운 전술을 갖고 협상을 재개하라”고 촉구하는 등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DDA 협상을 재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농업보조금과 시장개방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는데다, 미국과 EU는 이번 협상 결렬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데 급급하고 있다.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미국은 유연성이 없다”고 비난한 반면 미국은 “유럽이 농업개방에 대해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등 의지가 없었다”고 맞받아쳤다.

또 일부에서는 자유무역 확대와 빈곤국가 구제라는 DDA 협상의 목표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BW)는 이날 “미국과 EU의 농업 보조금 대거 삭감과 개발도상국의 높은 기대는 충족이 어려운 비현실적인 목표였다”면서 ▲유권자의 성향 ▲농업 관련 이익단체 활동 등으로 국내 보조금 삭감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분석했다. 미 컬럼비아대 무역경제학자 아빈드 파나가리야는 “목표는 정당할 수는 있지만, 미국 등 ‘빅 플레이어’가 쉽게 동의할 것이라는 기대는 다소 멍청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 경제블록 형성 가속화 예상 = 이에따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양자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지역 경제블록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카말 나스 인도 통상장관은 이날 협상결렬에 유감을 표하면서 동시에 EU·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만델슨 EU 통상집행위원도 “오는 10월에 중국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지역간 무역을 더욱 활성화하는 새로운 어젠다를 추진하겠다”고 말했고, 한국도 양자무역협상에 초점을 맞출 뜻을 밝혔다고 영국 BBC방송은 보도했다.

BW도 “협상 결렬로 세계는 다양한 지역 경제블록으로 분화될 것이고, 이는 세계 최대 경제 규모를 갖춘 미국에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DDA 협상이 성공할 경우 전세계는 440억달러(약 41조9000억원) 규모의 세금 삭감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브라질과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측됐었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