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편리하고 행복한 공간

미디어에 비치는 주인공이나 배우의 행동들이 때론 청소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TV를 보다보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함에 있어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얼마 전 한 방송의 드라마를 우연히 시청하게 됐는데,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는 장면이나 핸드레일(손잡이)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장면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 ‘청소년드라마’에선, 아이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탑승자들을 밀치며 장난을 친다든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여자친구와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출발 직전의 엘리베이터 문에 손을 디밀고는 억지로 탑승한다든지, 엘리베이터 문을 발이나 주먹으로 치는 장면도 눈에 밟힌다. 이 같은 행동들은 승강기 안전사고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발생한 승강기 안전사고를 살펴보면 ‘이용자 과실’이 전체 안전사고의 40%를 넘게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 에스컬레이터에서 뛰거나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엘리베이터 문을 발로 차는 등의 행동 때문에 일어나는 안전사고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맘때면 공포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부쩍 늘어난다. 공포의 종류도 다양하고 주제도 여러 가지인데, 이런 공포물을 접하다보면 끔찍한 장면에는 엘리베이터가 곧잘 등장하곤 한다. 실제 공포물 속 엘리베이터에선 사람이 문틈에 끼어 머리를 다치고, 거울 속에서 음산한 눈빛의 귀신이 출몰하거나 시체가 발견되는 장면은 보기 어렵지 않다. 이 같은 화면을 본 많은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또한 몇몇 인기 액션영화에선 폭발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로프가 끊어지고 수백 미터 승강로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려면 로프가 끊어져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로프를 끊거나 폭파하지 않으면 추락할 확률은 거의 없다. 설사 끊어진다 해도 엘리베이터가 정해진 속도보다 30% 이상 빨라지면 ‘안전장치’가 작동해 전원이 차단되고, 40% 이상 증가하면 ‘비상정지 장치’가 작동해 엘리베이터를 강제로 멈추게 하기 때문에, 실제상황에선 추락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처럼 영화나 TV 화면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장면들로 인해 사람들은 은연중에 승강기는 무섭거나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고, 에스컬레이터 또는 엘리베이터에서 뛰거나 장난을 쳐도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영화나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 15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승강기 안전체감지수 개발연구’(한국소비자보호원, 2005)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0.5%가 ‘승강기 이용시 불안감을 갖는다’고 대답했다.

요즘 TV 등 미디어에서는 ‘자동차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거나’ ‘운전을 하면서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통사고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인 폐해를 막기 위해 내린 조치일 게다.

반면에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정도가 하루에 두 번 정도 이용한다는 승강기는 편리하고 중요한 교통수단이 된 지 오래지만, 화면 속에서 여전히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을 잡고 이동한다든지, 엘리베이터 질서를 지켜가며 탑승하는 등의 기본적인 안전규칙이 실종된 채, 공포나 위험한 대상 정도로만 취급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유대운 /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원장]]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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