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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굴욕’ ‘저자세’ 또는 심지어 ‘매국’이라는 극단적인 말을 쓰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한국이 미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진정으로 나왔다면 나는 묻고 싶습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자신감이 없는가… 왜 그렇게 피해망상증과 열등의식의 노예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미국사람들과 상대하면 미국에 지게 마련이라는 패배의식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 말만 듣고 있노라면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나 이에 반대하는 일부 국민의 주장과 관련해 어떤 담화문이라도 발표했나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다. 지난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둘러싸고 학생 및 야당의 극렬 반대가 연일 계속되자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설적으로 밝힌 소회다. 단지 필자가 ‘일본’이라는 단어를 ‘미국’으로 바꿔 놓았을 뿐이다. 그 정도로 한·일기본조약과 한·미FTA 협상은 지금 너무나 닮은 꼴로 진행 중이다.

당시 한·일기본조약을 반대하는 학생과 야당은 ‘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요즘도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결성돼 활동하고 있다. 1964년 3월15일 야당지도자 윤보선은 부산 시민들 앞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제2의 이완용’이라고 비난했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3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FTA는 시민의 삶을 피폐시키는‘제2의 한일합방’이라고 불렀다.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세력은 “박정희가 자진해서 나라를 다시 일본에 넘겨주어 반식민지 상태로 만들고 있다”고 했는데 FTA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미국과의 FTA는 우리 경제를 미국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붕어빵이다.

그토록 한·미FTA가 한·일기본조약과 닮은 꼴이라면 다음과 같은 사실도 닮은 꼴이 돼야 마땅할 것이다. 즉 조약체결 이후 일본 기업들은 대대적인 한국 투자에 나섰고 대한(對韓) 기술이전에서 일본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역도 급속히 늘어나 몇년전만 해도 일본은 한국의 1, 2위 수출입 대상국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한·일 양국은 한일합방은커녕 국제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신우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