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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정일(44)씨가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됐다. 2일 강의를 시작했으니 학생들과 만난 지 1주일 됐다. 2, 3, 4학년 희곡창작, 희곡이론을 가르친다. 그를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대형서점 희곡서적코너에서 만났다. 그는 수업시간에 쓸 교재를 고르고 있었다. 수업교재를 고르는 장정일….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난 듯하다. 실제로 그의 출세작 ‘아담이 눈뜰 때’를 비롯해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의 작품을 염두에 두면 ‘교단에 선 장정일’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세상에 한 움큼 모래를 끼엊는 듯한, 이 전복적 이미지로 가득 찬 그의 작품들과 어딘지 안정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교수란 이미지가 어떻게 뒤섞일 수 있을까.

‘내게 거짓말을 해봐’란 장편소설로 외설 시비에 얽혀 ‘두번째 빵’에 갔다 오고 난 뒤 “속이 시원하다”라고 토로하던 그와 ‘희곡을 잘 쓰려면 어쩌고저쩌고…’하는 모습이 잘 얹힐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교수행 또한 그의 행적처럼 다분히 도발적인 느낌마저 준다. 지금 “강적을 만난 기분”이라는 장씨게게서 ‘강적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들어봤다.

―대학에 갈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사실 좀 의외였다. 주류체제에 대한 비판을 주무기로 삼았던 전사가 갑자기 투항한 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내가 대학에 갈 생각을 했겠나. 나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4, 5년 전에 동덕여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소설가 하일지 선생이 전화를 해서 나를 교수로 추천하고 싶은데, 자신도 밖에서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데 장정일씨도 아웃사이더라서 부담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는 그냥 고맙다고 했다. 작년에 다시 보자더니 희곡을 한번 가르쳐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대학교수는 팔자에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다. 말만 들어도 고맙다고 했다. 그러다 세상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가장 흥감하다고, 누가 나에게 교수 하라고 하겠는가. 알아주는 게 고마워서 알았다 하겠다고 했다.”

―소설이나 시가 아니고 희곡을 가르치는데.

“날 보고 시 선생 하라거나 소설 선생 하라고 했으면 능력도 안되고 생각도 없다고 했을 것이다. 희곡 선생 하라니까 갑자기 마음이 땡겼다. 나는 작가생활을 극작가로 마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많은 작가들이 대학으로 가고 있는데 이것이 꼭 소설에 좋은 결과를 빚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1990년대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대학원 진학을 한다. 소설로 뭘 해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 사실을 진작 깨달은 게 아닐까. 지금은 소설의 시대도 지났고 작가로서의 미래도 안보이니 또다른 미래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인은 어떤 경우인가.

“소설의 길이 안보여도 나는 구르면서 살 수 있다. 길이 안보여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왜 구르는 길을 계속 가지 않고 교수의 길로 갔느냐. 첫째는 뭐랄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랄까 그런 것이 있었고, 두번째는 희곡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희곡을 할 수 있다는 것, 희곡을 가르치면서 내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개강했으며 한 일주일 됐는데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는지.

“제자가 나와야 재미있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문창과가 작가 만드는 교육을 한다는데, 나는 문창과든 철학과든 모든 인문학을 가르치는 곳은 최종 목표가 ‘훌륭한 시민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내 수업목표는 훌륭한 시민을 만드는 것이다. 가령 극렬 ‘황빠’가 돼서 한 서울대 여교수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아줌마 속에 동덕여대 문창과 학생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고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이라고 본다.”

―소설가의 길은 어떻게 할 것인지…. 대학으로 간 많은 작가들이 실제로 글쓰기에서는 탄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도리어 글쓰기의 긴장을 줄 수 있다고 보는데.

“생활이 해결되면 글쓰기가 좋아져야 하는데 사실은 생활이 해결되면 글쓰기를 해야 할 현실적 이유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란 것이 현실에 맨살로 데면서 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인데, 생활문제가 해소되니까 글 쓸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결국 강한 놈을 피해서 갔는데 더 강적을 만난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없다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등의 문제는 더 많이 노력하면 되는 일인데 시간도 있고 생계도 해결된 상태에서 현실과 맨살로 부대끼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 ‘강적’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 발표가 뜸하다.

“나는 본래 과작이다. 천천히 또박또박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글은 부지런히 써야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95년부터 책으로 출간해왔던 ‘독서일기’가 곧 7권째 나온다. 처음에는 독서일기는 평생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것 때문에 내가 녹아내린 것 같다. 하루에 평균 200쪽의 책을 본다. 책 보는 것이 일상이고 일이다. 내 글을 써도 시원찮을 소설가가 하루 종일 남의 글을 보고 있으니, 거기서 내가 녹아내렸다.”

―시인에서 소설가로, 또 TV 교양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 진행자로, 이제는 교수로 옮아갔다. 장정일은 누구이고 뭘 하고 싶은 사람인가.

“인생은 진짜 알 수 없다. 그러나 뭔가로 모두 꿰어져 있다. 내가 왜 ‘TV 책을 말하다’ 진행자로 나섰겠는가. ‘장정일의 삼국지’ 때문이었다. ‘삼국지’는 왜 냈겠는가. ‘내게 거짓말을 해봐’ 때문이었다. ‘거짓말’은 왜 냈는가. ‘아버지’와 싸워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짓말’로 이 가부장 ‘아버지’를 골로 보내버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장정일은 바뀐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로 튼튼히 연결돼있다. 출판기획자인 김요일씨가 예전에 내가 소설을 계속 쓰려면 ‘독서일기’를 그만둬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글은 자꾸 써야 는다. 소설도 많이 썼어야 되는데 그 사이에 많이 못썼다. 많이 못 쓰니까 변명도 생기고 변명을 하다 보니 부담이 생기고…. 사실 정말 부담스럽다. 괴로울 정도로 부담스럽다. 멀쩡한 작가가 왜 이름을 바꿔서 글을 발표하는지 알 것 같다.”

―글쓰기가 부담스럽다는 말인가.

“야반도주란 말은 이웃에 빚을 남기고 밤중에 도망치는 것을 말하는데, 소설가의 야반도주, 지식인의 야반도주는 무엇인가. 현실의 문제, 내 이웃의 문제를 두고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소설가, 지식인의 야반도주 시대다. 이런 시절일수록 반드시 도망쳤던 소설가들이 돌아와 현실과 교섭하고 이 이념의 전쟁터가 돼버린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 다시 올 것이다.”

―본인의 글쓰기 계획을 말하는 것인가.

“사실은 이런 야반도주가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때때로 걱정되고 또 그것이 나를 다시 긴장시키기도 한다. 글 쓸 거리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내 소설이 ‘어디로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야반도주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시작하지 못한다. 장교가 되지 말자, 좋은 보직을 맡지 말자, 전방에 있자고 다짐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후방에 있는 기분이다. 현실에 맨살로 부대끼기는커녕 갑옷을 걸쳐입고 있으니 싸울 생각도 싸울 일도 없어지지 않았나 싶어 걱정된다. 계속 현실로부터 자극을 받고 이리저리 찔리면서 아파해야 하는데 이건 모든 게 안전하기 짝이 없으니 그게 최고 강적이다. 소설이 현실과의 교섭을 잃게 되면 쓸거리가 없어지게 된다. 현실과 싸우면서 쓰는 것이 소설가의 운명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하루 종일 책 읽는 데 다 보낸다. 거의 ‘책 읽는 남자’다. 요즘은 역사쪽에 관심이 많이 가서 매일 그 쪽을 읽는다. 소설은 안 읽은 지 오래 됐다. 몇년 전에 집에 있는 책을 다 버리고 이제 좀 읽을 게 없지 싶었는데 분야를 바꾸니 더 읽을 게 많다.”

―책 쓰는 남자가 아니라 책 읽는 남자가 됐다.

“이렇게 읽어대는 건 콤플렉스 때문일거다. 콤플렉스가 힘이 되기도 한다는데 나는 콤플렉스를 책 읽는 데 다 써 진이 빠졌다. 콤플렉스를 내 글 쓰는데 바쳐야 하는데, 딴 글 읽는 데 다 쓴다. 소중한 콤플렉스를 탕진하고 있다.”

소설가 장정일씨가 걸어온 길
▲1962년 대구 출생
▲1984년 ‘언어의 세계’에 시 ‘강정간다’ 발표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실내극’ 당선
▲1987년 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민음사)
▲1987년 제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1990년 단편집 ‘아담이 눈뜰 때’(미학사)
▲1992년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미학사)
▲1994년 장편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미학사)
▲1995년 프랑스로 건너가 2년여 생활
▲1995년 ‘장정일의 독서일기’(미학사)
▲1996년 장편‘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
▲1999년 장편 ‘보트하우스’(산정미디어)
▲1999년 중편 ‘중국에서 온 편지’(작가정신)
▲2004년 ‘장정일의 삼국지’(김영사)
▲2005년 KBS ‘TV 책을 말하다’ 진행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배문성 문화부장 msbae@munhwa.com